
한국 사회에서 재건축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30년이면 철거”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재건축은 주거환경 개선을 넘어 도시 구조와 부동산 시장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왜 재건축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경기신문은 기획 시리즈 ‘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를 통해 노후 아파트 재건축의 기준과 현실을 짚고, 그 이면에 놓인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무분별한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는 도시 재편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上) "30년이면 철거?"…진정한 정비는 재건 아닌 '개선'
(中) 환경 파괴 진통…‘장수명’ 주택 구조 전환 절실
(下) 도시 지속가능성 ‘위협’하는 한국형 도시정비
경기도의 한 아파트촌. 외관은 멀쩡해 보이지만, 주민들은 철거와 재건축만을 기다린다. “이젠 30년도 됐으니 허물어야죠”라는 말은 익숙하다 못해 상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도시를 유지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 ‘허물고 새로 짓는 것’뿐일까.
지금 한국의 도시정비는 속도에 쫓기고 있다. 철거를 전제로 한 재건축이 당연한 수순이 됐고, 건설사는 이 구조 속에서 이익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도시는 일회용이 아니다. 지금처럼 무분별한 재건축 일변도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재건축 일변도’로 향하는 현재의 도시정비 정책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외국은 수백 년 된 건물도 고쳐 쓰며, 부분 개선 등 현실적인 대안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재건축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벽식 구조가 만든 재건축의 늪”
한국 아파트의 다수는 ‘벽식 구조’로 지어진다. 공사 기간이 짧고 건설비가 저렴해 대량 공급에 유리하지만, 설비가 벽 속에 매립돼 있어 수리나 리모델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구조적 한계가 건물 전체를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으로 이어진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외국은 수백 년 된 건물도 고쳐 쓰는 데 반해, 우리는 30년도 채 안 돼 철거부터 생각한다”며 “지금처럼 건설사 중심의 공급 구조를 유지해서는 도시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배관을 외벽에 설치해 유지·보수가 용이한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 부분 보수나 기능 개선만으로도 수명을 연장하는 사례가 많다. 반면, 한국은 철거-신축 루틴에 갇혀 있다.
최 교수는 “문제는 건설사들이 재건축을 해야 돈을 버는 구조라는 점”이라며 “정부와 지자체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로또 재건축’의 그림자
한때 재건축은 ‘로또’였다.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지으면 시세차익이 수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공사비는 3년 새 50% 넘게 뛰었고, 인플레이션·인건비·자재비가 모두 상승하면서, 수익성은 급감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송파더플래티넘’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후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큰 관심을 받았지만, 이후 집값 하락과 전세 수요 감소로 분양권 시세가 2억 원 이상 빠졌고 수분양자들의 손절매가 이어졌다.
최 교수는 “당시 일반분양 물량이 15%에 불과해 사업성 확보가 어려웠고, 결국 조합원이 부담을 떠안는 구조였다”며 “재건축의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세대수 늘리기에만 집중하는 지자체
일부 지자체는 세대 수 확대를 이유로 용적률 상향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기반시설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인구만 늘면 교통·교육·환경 등 도시 인프라가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강남이나 분당의 교통난은 이미 과밀화의 전조”라며 “도시기능 전체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 확대는 시민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말했다.

◇ 주택 수명 27년…‘기둥식 구조’로 바꿔야
한국의 주택 평균 수명은 27년에 불과하다. 미국(71년), 영국(128년), 독일(121년)과 비교하면 현저히 짧다. 2014년부터 정부는 ‘장수명 주택 인증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권고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핵심은 구조다. 기둥식 구조는 하중을 기둥이 지지해 내부 벽체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배관과 배선 교체도 쉬워 유지보수가 가능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장수명 주택은 생애주기 비용을 최대 18% 절감하고, 건설 폐기물은 85%까지 줄일 수 있다.
◇ “도시는 고쳐서 살아가는 공간”
현재 한국의 주택공급 시스템은 ‘선분양’에 기반해 빠른 건설과 빠른 분양을 전제로 한다. 최 교수는 “속도를 중시하는 구조에서는 품질이 뒷전이 되기 쉽다”며 “결국 도시와 주택을 일회용 소비재처럼 다루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해외에서는 완공 후 분양이 일반적이며, 리츠(REITs) 기반 개발이나 장기 할부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도시는 허물고 짓는 공간이 아니라 고쳐서 살아가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주택은 세대를 이어가는 자산이며, 지금의 방식은 결국 미래세대에 비용만 전가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