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 上] "30년이면 철거?"…진정한 정비는 재건 아닌 '개선'

2025.05.07 05:00:00 1면

6월 재건축진단 기준 개정안 시행
주거환경 평가 비중 30%→40% ↑
개선보다 '자산가치 향상'에 초점
투자 심리 부추겨…불안 '재점화'
전문가 "재건축 추진 문턱 낮춘 꼴"

 

한국 사회에서 재건축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30년이면 철거”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재건축은 주거환경 개선을 넘어 도시 구조와 부동산 시장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왜 재건축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경기신문은 기획 시리즈 ‘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를 통해 노후 아파트 재건축의 기준과 현실을 짚고, 그 이면에 놓인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무분별한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는 도시 재편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上) "30년이면 철거?"…진정한 정비는 재건 아닌 '개선'

(中) 과잉 재건축이 불러온 사회적 비용

(下) 한국 도시정비의 위험한 속도전

 

“아파트는 30년이 지나면 철거해야 한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통념이다. 재건축은 더 이상 노후 주거지를 개선하는 기술적 정비 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가르는 변수로 부상했다.

 

서울 강남을 시작으로 수도권 전역에 확산된 재건축 바람은 단순한 주거환경 개선의 선을 넘고 있다. 그 바람은 이제 1기 신도시까지 타고 번지고 있다.


◇ 구조보다 환경… ‘완화된 문턱’이 촉발한 기대감

 

국토교통부가 오는 6월부터 시행하는 ‘재건축진단 기준’ 개정안은 재건축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 분기점이다. 주거환경 항목의 평가 비중이 기존 30%에서 40%로 상향되면서, 구조적 안전성보다 생활 편의성이 진단 통과의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 기준은 기존 구조안전성(30%), 주거환경(30%), 설비노후도(30%), 비용분석(10%)의 비중에서 ‘비용분석’을 제외하고 주거환경 항목을 40%로 조정했다. 주민 요청 시에는 기존 가중치를 적용할 수도 있다. 주거환경 평가 항목에는 기존 항목 외에도 ▲주민공동시설 ▲지하주차장 유무 ▲단지 내 녹지공간 ▲엘리베이터 ▲환기 설비 ▲단지 내 대피공간 등 생활 편의 요소들이 새롭게 포함됐다. 

 

국토부는 “주차난, 층간소음 등에 시달리는 노후 아파트 단지의 현실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부동산 업계는 “결국 재건축 추진 문턱을 낮춘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 6월부터는 ‘재건축진단’을 통과하지 않아도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재건축 추진의 첫 관문이 사라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준 완화가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를 부추겨 집값 불안을 재점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1기 신도시, ‘특별법’에 올라탄 기대…“지금 아니면 늦는다”

 

 

국토부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첫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첫 착공을 목표로 했다. 이후  1기 신도시별로 선도지구를 지정했다. ▲분당 1만 948가구 ▲일산 8912가구 ▲평촌 5460가구 ▲중동5957가구 ▲산본 4620가구로 총 3만 5897가구 등 애초 예고된 공급 물량보다 약 1만 호를 늘려 3만 5897가구를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각 지역 주민들은 조합 결성에 속도를 내며 “법 시행 전에 선점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1기 신도시 선도지구인 분당 샛별마을, 일산 백송마을 등을 중심으로 아파트값도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건축 열풍이 “오히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철거와 신축의 반복이 도시의 생애주기를 단축시키고 있다”며 “진정한 정비는 ‘개선’이지 ‘재건’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현재의 재건축 기준은 주거환경 개선보다 자산 가치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중장기적 도시 계획 안에서 재건축의 목적과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재건축, 도시의 ‘미래 설계도’를 다시 그릴 때


재건축은 더 이상 단지 노후 아파트의 물리적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재건축을 추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더 나은 삶인가, 더 높은 자산인가. 구조적 안정성은 뒷전이 되고, 투자 수단으로서의 재건축이 만연한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 ‘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오다경 기자 omotaa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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