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무슨 일 있으면 아빠를 불러. 아빠가 달려갈게

2025.06.09 10:49:09 16면

하이파이브 - 강형철

 

물이 반 잔이나 남았다, 반 잔밖에 안 남았다는 식의 얘기거나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것이라거나 아니면 세상은 이미 망했다 식의 얘기처럼 영화란 인간의 삶과 일상에 의미를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영화는 아무리 그래도 재미가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의 사람들은 대체로 영화를 코미디 장르로 만들거나 코미디 요소를 강하게 집어넣는 경향성을 보인다. 적어도 이들에게 있어 영화의 재미와 의미의 비율은 6대4거나 7대3이다.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그랬고(‘인생은 아름다워’) 작금의 한국 영화계는 바로 감독 강형철이 그렇다. 강형철은 ‘과속 스캔들’과 ‘써니’에서 보여 준 자신의 ‘내추럴 본 코미디’의 자질을 새로 소개된(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유아인 스캔들로 지난 2년간 공개가 미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 ‘하이파이브’에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강형철을 코미디 전문 감독이라고만 규정지을 수는 없겠다. 그가 만든 ‘타짜 : 신의 손’(2014) ‘스윙 키즈’(2018) 등의 필모그래피는 강형철의 재능이 코미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이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 ‘하이파이브’는 일단 설정이 발칙하다. 국내에 슈퍼 히어로가 암약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살을 했는데(너무나 강한 책임감 때문에?) 그의 장기가 총 6명에게 이식이 됐고 그 6명 모두에게 초능력이 전이됐다는 설정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6명 중에 악당이 하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5명의 신입 초능력자와 슈퍼 파워로 영생을 얻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싶어 하는 악당과 선악의 대결이라는 이야기 구조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악당의 캐릭터 설정에 있어서도 강형철의 스토리는 너무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 역시 특이한 부분이다. 아마도 영화 제작의 시작이 윤석열 시대 시작쯤에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의 빌런은 정치권이나 재벌 같은 부류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이 악당은 이단 종교의 지도자이다. 새신교의 교주 영춘(신구)은 자신이 거짓으로 이뤄 놓은 종교 제국을 ‘즐기기’ 위해 영생과 초능력을 얻으려 한다. 그는 슈퍼맨의 췌장을 이식받고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며 후계자인 딸 춘희(진희경)의 음모로 다른 초능력자 5명에게서 그들이 이식받은 장기를 뺏어와 1인의 슈퍼 파워맨이 되려 한다. 다른 5명은 이 슈퍼맨 악당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친다.

 

 

다른 5명으로는 심장을 이식받아 강력한 파워와 속도를 지니게 된 태권 소녀 완서(이재민)와, 폐를 이식받고 엄청난 폐활량으로 강풍을 일으킬 수 있는 지성(안재홍)이 있다. 안구를 이식받아 인간 해커가 된 ‘양아치’과 남자 기동(유아인)도 있다. 간을 이식받고 치유 능력이 생긴 허약선(김희원)이라는 새신교 신자,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흡수하고 연결시키는 능력의 김선녀(라미란)가 합세한다. 이들은 각각 나인 걸(구하는 소녀에서 구걸이라고 했다가 나인 걸이 된다.), 탱크 보이, 블루투스 맨, 밧데리 맨, 후레쉬 걸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갖게 된다. 자신들 팀 이름도 하이파이브로 짓는다. 그러나 곧 하이파이브 멤버들은 사이비 교주 영춘 조직에 납치돼 장기가 적출된다. 영춘은 밧데리 맨 허약선의 간을 탈취해 급속도로 젊은 교주(박진영)로 변신한다. 하이파이브 초능력자 팀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하이파이브’는 기본적으로는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 ‘판타스틱 포’에서 이야기 구성을 가져오고(이들은 우주 비행사로 우주탐사에 나갔다가 초능력을 얻고 돌아오게 된다.) 여기에 잭 스나이더가 만든 ‘저스티스 리그’를 합치되, 소위 ‘빠다 맛’ 그러니까 할리우드 느낌을 완전히 빼버리고 순 한국식의 토종 느낌으로 만든 작품인 셈이다. 이 정도면 모방이 아니라 창작의 수준이다. 특이함이 유별나면 보편적이 된다. ‘하이파이브’는 해외 시장에서도 그리 이상하거나 촌스럽다는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독특하고 재미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을 공산이 크다. ‘저스티스 리그’ 같은 영화는 3억 달러(3563억 원)를 쓰지만 이번 ‘하이파이브’는 150억을 쓴 영화이다. ‘하이파이브’의 손익분기점은 국내 기준으로 290만 관객 선이다.

 

 

초능력의 현란한 신세계가 펼쳐지지만 이 영화 ‘하이파이브’의 진짜 미덕은 부성애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연대의 가치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나인 걸 완서의 아버지(오정세)는 태권도장 관장이다. 아이들에게 댄스에 가까운 태권 품새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고 저녁에는 대리기사를 하면서 돈을 보충해서 번다. 실로 열심히 산다. 오직 딸 완서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아이의 병원비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아내도 심장병으로 잃었고 아버지도 심장마비로 돌아갔다. 완서의 아버지는 오직 완서만 바라보며 사는 팔불출이다. 그는 자주 찔찔 짠다. (이때의 오정세 연기는 발군이다.) 그는 아이가 초능력의 소유자가 된 걸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발차기만이 완서에게 몰려오는 악당의 수하들을 무찌른 줄 착각한다. 사실은 뒤에서 완서가 도운 것이다. 완서 아버지는 늘 이렇게 호언장담한다. “완서야. 아빠 뒤에 딱 붙어 있어. 아냐 아냐 저기 구석에 가 있어. 거기 가만히 있어. 이놈들은 아빠가 알아서 할게.” 푼수끼가 농후한 아빠지만, 그래서 만화 캐릭터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위기에 처한 하이파이브 팀을 최후의 순간에 구해내는 것은 결국 완서의 아빠, 곧 부성애이다. 세상의 아빠는 늘 말한다. 무슨 일 있으면 아빠를 찾아. 아빠를 불러. 그래서 이 영화의 완서도 결국에는 이렇게 외친다. “아빠!” 그 순정의 마음이 가슴을 울린다. 좋다.

 

 

하이파이브 팀은 마음이 잘 맞는 팀이 아니다. 늘 말들이 많고 티격태격하기 일쑤이다. 특히 탱크 보이 지성과 블루투스 맨 기동이 그렇다. 그들은 한 살 차이, 혹은 몇 개월 차이를 가지고도 내가 형이네, 네가 동생이네를 놓고 싸운다. 그들은 서로 팀의 주도권을 쥐려고 애쓴다. 그러나 각자의 능력만 가지고는 새신교 교주의 교활한 조직을 일소해 낼 수 없다. 그들은 결국 힘을 합쳐야 하며 프레쉬 걸 선녀를 통해 서로 연결돼야 한다. 연대가 힘이다. 각자 스스로의 잘난 맛을 내려놓고 모자란 것을 서로 보충할 때만이 진정한 슈퍼 파워가 태어날 수 있다. 대중의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하이파이브’가 재미를 넘어 추구하는 의미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하이파이브’는 유쾌하고 따뜻하며 그래도 이 사회와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아직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다. 물이 반 밖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하이파이브’의 주제이다.

오동진 chow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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