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를 강타한 폭우 여파로 오산시에서 옹벽이 붕괴하는 등 피해가 발생한 지 1달이 지났다. 적절한 안전점검과 관리 및 감독이 부실한 '인재(人災)'라는 평가가 뒷따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상 중대시민재해는 정작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면서 실효성 논란이 뒷따른다.
21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오산시 가장동 가장교차로 수원 방향 고가도로의 10m 높이 옹벽이 무너지면서 아래를 지나던 승용차가 깔려 운전자 40대 남성이 사망했다.
당초 경찰은 중처법상 중대시민재해를 적용하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한다고 밝혔으나, 정작 입건된 오산시청 관계자 3명은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가 적용됐을 뿐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된 경우는 없었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재해를 뜻한다. 중처법상 중대산업재해와 마찬가지로 사업주 등의 과실로 발생한 안전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현실에선 실효성이 없는 모양새다.
중처법상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된 '제1호' 사건은 지난 2023년 4월 1명의 사망자와 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성남시 정자교 붕괴 사고다. 교각이 뒤틀리는 등 붕괴가 예고됐으나 안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받는 등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신상진 성남시장을 중대시민재해 혐의로 입건했으나 1년 동안 피의자 신분으로 받은 조사는 단 1번에 그쳤고 결국 무혐의가 결정됐다. 중대시민재해의 실효성에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대시민재해가 포함된 중처법 특유의 '모호함'이다. 중처법에 따라 사업주 등이 해야 하는 조치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할 것', '필요한 인력을 갖춰 재해 예방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것'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위법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이는 중처법상 중대산업재해에서도 마찬가지인 실정이다. 현재까지 중처법 중대산업재해로 50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됐으나 지난 5월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단 15명만이 유죄를 받았다. 징역 1년의 실형이 1건, 징역형의 징역 유예 1~3년이 14건이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 단계에서 중처법을 피의자, 즉 사업주에게 적용하는 것부터 난관으로 실효성에 의문인 상황"이라며 "중처법으로 재해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선 수사당국이 법적용에 부담이 없도록 하고, 법원이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주의 역할을 분명하게 명시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