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 대학을 뒤로 하며

2026.02.12 06:00:00 15면

 

이번 달로 대학 강단을 내려온다. 30대부터 매달려 왔던 대학 강의가 어느덧 정년이 되어 마무리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즐겁고 영광이었지만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는 나의 행복에 비례해서 많은 희생을 강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보람으로 가득 찼던 순간들이었음은 틀림없다.

 

전공이 정치학이고 그중에서도 한국 정치사상을 전공하다 보니 배워야 할 것들 천지이고 깊이를 더 할수록 존경해야 할 분들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연구의 순간은 늘 행복했다. 한국 근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사상에 빠졌고, 오늘 대한민국의 기원인 임시정부의 정치적 근간이 된 조소앙의 삼균주의라는 정치사상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크나큰 영광이자 보람이었다. 비록 수운 최제우나 조소앙의 사상 근처에도 못 가지만 스스로의 수준을 잘 알기에 만족하며 보낸 연구 시간이었다.

 

얕은 지식이나마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행복도 뺄 수 없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좌우명인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를 되새기며 자신에게 늘 “나는 강의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묻고 또 묻기를 거듭했다. 그래도 부끄러웠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열심히 가르치고, 좀 더 진지하게 상담해 주고 지도해 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가득한 순간들이 우선 기억되고 있다.

 

지금껏 교육계에 있었던 입장에서 오늘 사회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음도 고백한다. 어쩌다가 오늘 한국 사회가 공동체 의식보다는 그저 개인적 이익에 매몰되어 버렸는가. 정의는 고사하고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인성 교육은 어디 가고 그저 테크닉에만 몰두하는 강의실은 또 어쩌란 말인가. 그 많은 부조리의 원인은 어디 있는가. 오로지 대학입시 하나에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너무도 잘 알면서도 해결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무력감과 자괴감 역시 부인키 어렵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능력으로 세습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는 더 심한 모멸감까지 느꼈다면 지나칠까.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이 활발하다고 느끼는 성인은 4명 중 1명에 그친다고 한다. ‘계층 사다리’가 불가능한 이유는 자녀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68%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원이 자녀의 지위에 영향을 주며 그렇지 않는다는 응답은 0.7%라고 한다.

 

사회 지도층은 늘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들만의 특권 카르텔을 형성해 놓고 그 아성을 지키고 계승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정책의 최우선을 자신들이 거주하는 서울 수도권으로, 집값은 오직 강남이 기준이고, 교육은 서울 대치동이 교본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문과는 법대요, 이과는 의대만 존중받는 사회를 만든 것 또한 그들이다. 의사는 죽는 순간까지 면허가 살아있고, 법조인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임료를 논하기에 어쩔 수 없이 모든 국민은 자식들을 그리로 집중케 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만민평등과 생명 존엄을 외친 동학사상과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그린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의 균등함이 실현되는 사회는 진정 이상론자들만의 세상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강단을 떠나지만 다짐한다. "스승님들이 추구한 사회를 만드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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