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했다.
중동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브렌트유는 한 달 만에 50% 이상 급등, WTI도 98달러를 넘었다.
한국은 원유 100% 수입 의존국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오르내리며 출렁이면서 소비자물가 압력, 주식·경기까지 하락하고 있다.
이미 내수 부진과 건설경기 침체로 힘들던 레미콘·건설업, 구조조정 중이던 석유화학, 물류비 부담이 커진 식료품 업계는 유가 쇼크로 타격을 받고 있다.
22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연평균 150달러까지 오르면 GDP 성장률 0.8%p 하락, 물가 2.9%p 급등, 경상수지 767억 달러 적자 확대를 경고했다.
이 같은 유가 폭등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전 산업에 파급효과를 미친다.
레미콘·건설업계, 경유·자재비 폭등에 ‘4월 고비’
아스콘 공장에 이어 레미콘 공장도 비상이다. 이들은 오는 4월부터 고비라고 입을 모은다.
레미콘 공장은 시멘트·골재 혼합에 경유를 쓰고 현장까지 운송도 경유 트럭에 의존한다.
이미 레미콘 단가 추가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내 레미콘 업계는 오는 4월부터 큰 영향이 온다고 예고했다.
안성 지역 내 레미콘 공장 관계자는 “기름 수급이 어려우면 운행에 문제가 돼 업계에서 유가 공유는 하고 있고, 대비 태세”라면서 “4월에 유가 상승이 원가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가 고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요소수 사태가 가장 심했는데 이 시기가 재현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건설 현장에서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건 경유값이다.
국제유가가 50% 상승하면 국내 건설 생산비용이 평균 1.06% 오른다. 특히 토목 공사가 직격탄이다.
현재 국내 건설 현장에서는 유가 상승이 즉각적인 공사 중단이나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이미 고정된 계약 단가로 공사를 진행 중이고, 단기적인 유가 변동은 자재 납품 가격에 바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 업계는 관망 단계지만 현장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가 상승분을 흡수 못 해 분양가 인상이나 착공 연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토목 현장은 장비, 물류 비중이 높아 건축보다 유가에 2~3배 민감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 차질은 부동산 경기 추가 위축으로 이어지고, 레미콘 수요 급감 등 악순환이 예상된다.
나프타 원가 폭등 석유화학 ‘직격탄’
나프타(원유 정제물)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액체 탄화수소로, 플라스틱과 합성수지 등을 만드는 석유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다.
한국 석유화학은 세계 5위 생산국이지만, 중국 공급 과잉으로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이미 가동률이 70%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여기에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NCC(나프타 분해설비)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케미칼·LG화학·SK케미칼 등은 일부 고객사에 '공급 지연 또는 조정' 통보를 시작했다.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시 중동 생산 차질로 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원료 가격이 급등해서 제품을 만들어도 마진이 줄어들거나 오히려 손실이 날 수 있다.
특히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원료가 플라스틱·합성섬유·포장재 전방산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석유화학 부진은 자동차·가전·건설 자재까지 도미노 충격을 준다.
평택 석유화학공장 관계자는 “매일 재고 소진 속도를 체크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국면이다. 중동 정세 안정화가 최우선 과제지만 그게 안 되면 4월이 진짜 데드라인”이라고 했다.
20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t당 1068달러로, 전주 대비 79.19%, 연초 대비 101.13%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통과하는 항로다. 업계는 통상적인 재고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부 업체는 배급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공급 안정성이 취약해진 상태다.
운송·보관·생산비 상승, 밥상 물가 불안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식료품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달 국제유가 배럴당 110달러 돌파와 원달러 환율 1490원대 급등이 겹치면서 국내 식료품 업계가 원가 압박에 직면했다.
농축수산물 운송 80% 이상을 경유 트럭에 의존하는 구조상 유가 상승은 물류비 폭등으로 직결되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공식품 원재료(밀가루·설탕·팜유 등)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유가 50% 상승시 운송비는 30~40% 급등하고 냉장·냉동 트럭은 연료 소비량이 더 크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유가 10% 상승 시 소비자물가 0.2%p 추가 상승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지난 2월 식품 물가 상승률은 2% 수준이지만, 이달 석유류·운송비 반영으로 3%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라면·빵·유제품 등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줄줄이 예고되는 상황에 대기업들이 가격 인하를 발표했지만, 인기 상품 등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밥상 물가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딸기,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농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침체 시기는 일단락될 전망이다.
대부분의 업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에 처해지는 반면, 비닐하우스 농가는 난방 시즌이 끝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가속화… 정부 ‘유가 최고가격제’ 카드
유가 쇼크는 산업별 문제가 아니다.
원유 100% 수입에 중동 의존 70% 구조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KDI는 “대외 불확실성 확대”를, 현대경제연구원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경고했다.
반도체·조선 수출 호조로 버티던 한국 경제에 내수·제조업 동반 침체 위험이 커졌다.
정부는 민생경제 충격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초강력 유가 안정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청와대 주도로 석유 판매가격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유류세 추가 인하·비축유 방출을 검토 중이다.
최고가격제 시행 후 주유소 가격 안정화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 진통제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다각화(재생에너지·원전)와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라고 지적한다.
유가 110달러 시대는 단순 ‘기름값’ 문제가 아니다. 레미콘 한 대, 플라스틱 포장 하나, 식탁 위 빵 한 조각까지 연결된 한국 경제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중동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가 경기침체 깊이를 결정할 전망이다.
[ 경기신문 = 최화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