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환자만 보다 돌팔이 될라"…2년 매달린 의료진의 걱정

2022.04.18 08:02:59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대응 현장 목소리 담은 백서 발간
"취약계층 진료 단절에 내부 불화도…위기대응 계획 미리 수립해야"

"의료진은 전공 관련 환자를 보며 계속 공부하고 경험하고 논문도 읽어야 실력이 쌓이는데 이렇게 코로나19 환자만 보게 하면 돌팔이가 되든 그런 게 싫어서 떠나든, 둘 중 하나가 돼요."(국립중앙의료원 관리자)

 

국립중앙의료원(이하 의료원)이 코로나19 대응 과정과 현장의 목소리,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등을 담아 최근 발간한 '코로나19 대응 백서 Ⅱ'에 실린 의료진의 목소리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 책에는 코로나19 대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의료원 구성원 23명과 외부 관찰자 4명을 면담해 2년여간의 성취와 한계점을 정리한 내용이 포함됐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 전공의 수련 질 저하…진료공백에 취약계층부터 타격

 

의료진은 꾸준한 환자 진료를 통해 의학 지식과 임상 측면의 전문성을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의료 현장에서는 코로나19 진료와 거리가 먼 임상과 의료진의 전문 역량이 쇠퇴했고, 여러 환자를 경험하며 지식과 술기를 익혀야 하는 전공의 수련의 질도 떨어졌다는 증언이 잇달았다.

 

이런 문제는 코로나19 대응의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 특히 심각했다.

 

관리자 A씨는 "(코로나19 이외의) 환자가 거의 10분의 1로 줄어서, 편한 부분도 있겠지만 '의사로서 이게 뭐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에도 외과 선생님 한 분이 나간다고 하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수술을 못 하고 여기서 계속 이렇게 뭐 하려고 있나(하는 생각일 듯하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에서 기존 환자들의 진료가 단절되거나 진료 횟수가 줄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공병원 이용 환자 상당수가 취약계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로 의료 체계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지리라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의료진 B씨는 "제일 문제가 되는 환자는 급여 환자, 노숙인 등 진료비 상환 능력이 없는 환자"라며 "이런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극소수라 전원이 어렵다. 받아주는 병원도 자리가 없어서 못 받겠다고 하면 진짜 갈 데가 없다"고 지적했다.

 

◇ 업무 증가에 팀워크 저하…초기 백신 못 맞은 파견의료진도

 

코로나19로 업무가 늘어나자 구성원 사이에 업무 분담, 보상, 안전을 둘러싼 불만과 갈등도 불거졌다. 충원된 파견 인력과 기존 인력 간 팀워크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기도 했다.

 

의료진 C씨는 "중환자실 환자는 호흡기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기저 질환이 깔려 있고, 신부전증·심부전증이 생겨서 협업해야 하는데 '너희 과가 보기로 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 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파견 인력보다 기존 인력의 급여가 현저히 낮아 불만을 느끼고 현장을 떠나는 의료진이 있는가 하면, 초기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파견 의료진도 있었다.

 

의료진 D씨는 "파견 의료진에게도 백신을 주긴 했으나, 의료원이 우선해서 챙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병원 의료진은 여기서 백신을 맞을 수 없고, 나중에 순서가 되면 돌아가서 맞아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 메르스 대응 경험, 도움 됐지만 부정적 기억도 여전

 

의료원이 국가 중앙 공공병원으로서 코로나19 비상 대응 조직을 만들고 격리병동 운용 계획을 수립하는 데는 2015년 메르스 대응 경험도 도움이 됐다.

 

메르스 유행 이후 보호복 착용 등 감염병 대응 교육이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았고, 경험 있는 인력을 즉각 코로나19 진료에 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르스 대응 경험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부정적 경험 탓에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거나, '포스트 코로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관리자 E씨는 "가정을 희생하고 (메르스 대응을) 했는데 이후에 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며 "끊임없이 소모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못하겠다고 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왔다"고 털어놨다.

 

의료원은 이런 면담 참여자들의 경험과 의견에 기초해 위기 상황 변화에 따른 병동 활용과 인력 동원 계획을 미리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병원 전체의 진료 역량이 한층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흡기로 전파되는 감염병이라고 해서 감염내과나 호흡기내과만의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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