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새 값 '반토막'…전국 곳곳에 폐지 20만t 쌓였다

2022.12.10 09:04:41

압축장도 제지공장도 물량 소화못해 '끙끙'…"가격 하락세 내년까지"
수거 노인들 "종일 주워도 만원도 힘들어" "폐지 75kg에 단돈 3천원"

 

지난달 14일 찾은 경기도 양주시 대형 창고에는 폐지가 가득했다.

 

한국환경공단이 관리하는 1만2천여㎡(3천630평) 규모의 비축창고 두 곳에는 수도권 등에서 넘어온 광고지와 컵라면 용기, 동화책, 선물 포장지, 택배 상자 등 다양한 종이를 압축해 만든 약 1.2m 크기의 폐지 더미 수백 개가 4∼5m 높이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축구장(7천140㎡) 면적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이곳에 보관된 폐지량은 9천t에 달한다.

 

창고 뒤편으로 들어갈수록 습하고 쿰쿰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지난여름 장마철에 들어온 폐지가 아직도 배출되지 못한 탓이다.

 

현장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2018년 당시 발생한 폐지 수거 대란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창고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운영한 지난 7월 이래 이처럼 폐지가 많이 쌓인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 경기 침체로 수요 줄어…공공 비축에도 공장엔 폐지 산더미

 

지난 10월 환경부는 폐지 압축장과 제지공장 등에 쌓인 폐지를 경기 양주와 안성, 대구 등 전국 6곳의 공공 비축창고로 이동시켜 1만9천t을 저장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폐지 가격이 줄곧 하락세를 나타내고, 적체 현상도 완화되지 않자 이달 2일부터 충북 음성군과 청주시 공공창고에 폐지 9천t을 추가로 비축하기로 했다.

 

가정에서 배출된 종이 쓰레기는 폐지 수거 노인들의 손을 거쳐 고물상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모인 폐지를 수거 업체가 거둬들여 폐지 압축장으로 보내는 흐름이다. 폐지 압축장은 이것을 주사위 모양으로 압축한 후 국내외 제지 공장 등에 판다.

 

문제는 세계적인 불황 등으로 종이 수요가 줄어들면서 제지 공장이 더는 압축장에서 폐지를 사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폐지 압축장과 제지 공장 사이에서 일종의 동맥경화가 생긴 셈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국내 제지회사의 폐지 재고량은 14만4천t에 이른다. 공공 비축창고로 넘어간 물량을 제외한 수치임에도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천t 더 늘어났다.

 

폐지 압축장에 쌓인 재고량도 비슷한 시기 5만8천t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약 1만5천t 늘었다.

 

이처럼 제지공장과 압축장, 공공 비축창고에 쌓인 전국 폐지 재고량은 20만t이 훌쩍 넘는다.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경계선 부근에 있는 한 폐지 압축장에서 일하는 차모 씨는 "한두 달 전만 하더라도 차를 못 댈 정도로 폐지가 가득 찼다"고 말했다.

 

야적장과 창고 등에 보관했던 압축 폐지가 1천t에 이를 정도였으나, 10월 중순께 정부 비축 창고로 일부 물량이 넘어가면서 700t까지 줄어들며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압축장에 모이는 하루 폐지량이 80∼100t에 이르는 만큼 다시 쌓이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차 씨를 만난 지난달 18일 오후 3시께에도 폐지를 가득 실은 5t 트럭 행렬이 5∼6분마다 이어지면서 압축장에 폐지를 쏟아붓고 돌아갔다.

 

차 씨는 "한창 시장이 활성화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출했는데 10월에는 단 한 번에 그쳤다"며 "국내에서 폐지를 다 소비하지 못하는 만큼 수출이 막히면 폐지가 쌓이고 가격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폐지 수출량은 지난 3월 5만t에서 꾸준히 감소하면서 10월에는 2만t까지 쪼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제지 시장 불황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임에 따라 전반적인 종이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제지회사에서도 공장 가동률이 낮아졌고, 제지의 원료가 되는 폐지 역시 수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1t당 폐지 수출 가격은 지난 3월만 하더라도 200달러가 넘었지만, 10월에는 109달러까지 떨어졌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우리나라의 주요 폐지 수출국인 인도와 필리핀 등이 불경기로 폐지 수입량을 줄였다"며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럽산 폐지가 많이 쏟아지면서 한국산 폐지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 오르락내리락하는 폐짓값…쪼그라든 수입에 수거 노인은 '한숨'

 

폐지는 재활용 품목 중에서도 가격 변동성이 유독 큰 편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폐지 수입을 축소했던 2020년 초만 하더라도 압축장 기준 폐지 가격은 ㎏당 56원에 머물렀다. 최근 3년간 최저치다. 이후 꾸준히 오르면서 지난해 12월 153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하락세로 돌아서며 지난 11월에는 84원까지 떨어졌다. 1년 새 가격이 거의 반 토막 난 것이다.

 

최근 3년간 가격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 셈이다.

 

폐지를 주워 생계에 보태던 고령자들은 이런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체감하는 이들이다.

 

서울 곳곳에서 마주친 폐지 수거 노인들은 "예전과 똑같이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 몇 달 만에 반 토막으로 줄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청 근처에서 사는 박 모(78) 씨는 작은 리어카를 끌고 2.4km 떨어진 망원한강공원의 한 고물상을 찾았다.

 

폐지와 헌 옷, 깡통 등을 실어 온 박 씨는 "여기가 다른 고물상보다 더 잘 쳐준다고 소문이 나서 왔다"고 말했다.

 

7년째 폐지 등을 모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오전 4∼5시에 일어나 동네 곳곳을 돌면서 폐품을 수거해도 만 원짜리 한 장 손에 쥐기가 어려워졌다"며 "여름철만 해도 3만 원은 넘게 벌어갔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정 모(75) 씨도 "예전과 똑같이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갔지만 받은 돈은 절반으로 줄었다"며 "오늘 폐지 75kg을 모아서 받은 3천 원"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폐짓값을 지불하는 동네 고물상 업자들도 입맛이 쓰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이명규(78) 씨는 손수레에 폐지 등 재활용품을 싣고 온 한 노인에게 1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이 씨는 "원래 900원이 나왔는데 100원 더 얹어줬다"며 "예전보다 덜 쳐준 것은 맞지만 (우리 물건을 사가는) 압축장에서도 매입 가격을 낮춰 잡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재활용 업체를 해온 그는 "최근에는 우리 마진율을 깎아가면서 돈을 주고 있다"며 "이제는 폐지 들어오는 게 겁날 정도"라고 털어놨다. 고물상 한편에는 지난 장마철에 들어온 신문지와 택배 상자 등이 2m가량 쌓여있었다.

 

7년째 서울 광흥창역 근처에서 재활용 업체를 운영하는 강모(39) 씨도 "8∼9월께 이미 마진이 남지 않을 정도로 폐짓값이 곤두박질쳤다"며 "여기서 가격이 더 내려가면 4∼5년 전처럼 고물상들이 폐지 수거를 거부하는 '폐지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혀를 찼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불황이 길어지는 데다, 새 학기와 이사 철이 몰린 봄철에 헌책이나 포장지 등 폐지 발생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홍수열 소장은 "폐짓값 하락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라고 전했다.

 

환경부 관계자도 "폐지 시장이 안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면서도 "폐짓값이 반등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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