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사람일 수 있는 시간

2023.04.24 06:00:00 13면

 

일초라는 시간은 짧다. 
틱, 하면 사라지고 틱, 하면 나타난다. 틱, 하는 순간 소멸해버릴 작은 단위를 왜 사람은 시간의 범주에 포함시켰을까? 하찮아 보이지만, 일초가 지닌 의미는 흥미롭다. 일초는, 야구경기에서 투수 손을 떠난 야구공이 배트를 맞고 다시 투수에게 날아가는 시간이다. 일초는, 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온 침이 백 미터 날아가는 시간이고, 총알이 구백 미터 떨어진 표적을 관통하는 시간이다. 뿐만 아니다. 달팽이가 일 센티미터 전진하고, 두꺼비 혀가 먹잇감을 낚아채고, 벌새가 육십 번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 모두 일초에 이루어진다.

 

범위를 지구촌 전체로 넓히면 일초가 지닌 의미는 더욱 흥미롭다. 일초마다, 세 번 결혼식이 열리고, 네 명이 태어나고, 두 명이 죽는다. 일초 동안,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사백팔십육억 킬로와트의 에너지를 받고, 사백이십 톤의 비가 쏟아지고, 일만 천 리터의 바닷물이 증발한다. 두 대의 승용차와 네 대의 텔레비전이 생산되고, 청바지는 칠십 벌, 신발은 백 켤레가 팔린다. 그것이 일초다. 오천칠백 리터의 탄산음료와 오십일 톤의 시멘트가 소비되고, 스물두 명의 여행자와 이십만 건의 문자메시지가 국경을 넘나든다. 틱, 하고 사라져버리는 그 짧은 순간에, 우주에서는 일흔아홉 개의 별이 사라진다. 그것 또한 일초다.

 

범위를 사람 내부로 좁혀도 일초는 경이롭다. 사람은 수십 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세포는 사람의 삶과는 무관하게 끝없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 일초라는 짧은 순간에도 사람의 몸에서는 천만 개의 세포가 새롭게 태어나거나 늙거나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 체세포는 한 달 정도 사는데, 일 년이면 대부분의 낡은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그렇게 보았을 때, 똑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다. 일 년 전의 나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세포로 탈바꿈한 별개의 생명체다.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다라는 말은 그래서 틀림이 없다. 사람의 몸은 산소와 탄소, 수소와 질소, 그리고 극소량의 칼슘과 인과 칼륨으로 만들어졌다.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기본 성분과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성분이 다르지 않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별이 우주 공간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서도 세포의 생성과 사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재진행형인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사람을, 경이롭게 대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바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경이로운지 망각하고 살아간다. 망각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다. 두 발로 걷는다고 해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일초는 첫눈에 반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거짓도 마찬가지다.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도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초다. 일초의 결정으로 정권이 바뀌고, 전쟁이 터지고, 역사가 변한다. 일초의 선택으로, 속이고 배신하고 훔치고 빼앗고 죽이고 모른 척 한다. 나누고 돕고 살피고 보듬고 끌어안고 사랑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일초다. 선택에 이르기까지 들이는 시간은 길어도 결정의 순간은 실로 짧다. 참으로 짧은 것이 사람답게 사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골치 아픈 뉴스도 알고 보면 일초의 결과다.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하고 결정하자. 일초야 말로,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가르는 경계선이니까.

고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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