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n 수원] "그날의 흔적 잊지 않겠습니다"…수원 독립운동가의 희생 기억하는 수원시

2025.07.08 10:22:16 6면

구체적 자료 부족·후손 없는 독립운동 인물 찾아 포상 신청
김노적, 선각자 이현경, 일제 치하 옥고 치른 5인 등 발굴
이선경, 홍영유·한인택까지…수원 출신 운동가 13인 서훈

 

수원지역의 뜨거웠던 만세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 '김노적'과 국내외 항일 활동의 흔적이 다수 남아 있는 '이현경'은 아직 국가의 포상을 받지 못한 대표적인 수원의 항일 인물이다.

 

수원시 박물관사업소는 최근 김노적과 이현경을 포함해 총 7명의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을 국가보훈부에 신청했다. 후손이 없거나 증거자료가 부족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인물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그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뜨거웠던 조각을 모아 그들을 기리다

 

김노적은 1895년 수원면 산루리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수원중·고등학교인 수원상업강습소에서 초등과와 고등과를 다녔는데 당시 소장(교장), 겸소감(교감)이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었다.

 

은사와 제자로 만난 이들은 1919년 만세 운동을 수원에서도 일으키기로 했다. 이때 김노적은 주도자로 체포되며 심한 고문과 구타로 머리 한쪽이 함몰되고 왼쪽 손목이 으깨지는 등 고통을 겪었다.

 

이같은 고통은 김노적의 독립운동 열정까지 꺾진 못했다. 그는 기차로 통학하던 수원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원학생친목회를 조직해 활동했고 졸업 후 화성학원과 삼일학교 등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신간회 수원지회 창립회장으로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이현경은 1899년 수원면 산루리에서 이학구의 장녀로 태어났다. 만세운동 2주기이던 1921년 3월 1일 동경 히비야공원에서 140여 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펼쳐 주동자 중 한 명으로 체포됐다. 약 11년간 일본에서 지내며 삼월회 등 여성운동 단체 활동을 했다.

 

귀국 후에는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해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며 근우회 활동에 주력했다. 이후 일제 탄압을 피해 남편 안광천과 중국으로 망명, 1930년대 초까지 김원봉과 함께 북경에서 활동한 흔적이 남았다.

 

 

◇독립의지 담긴 흔적 발굴…5인의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시가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포상을 신청한 독립운동가들은 주로 독립, 민족 운동을 하다 체포되고 그로 인한 판결문이 남아 있어 공적 확인의 근거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1916년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 출생인 문용배는 용산공작소 직공으로 일하던 중 조선공산당재건 사건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1937년 수감됐다. 윤경의는 1893년 수원군 서신면 매화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1937년 전시 체제기 일본군이 진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금고 6월을 선고받았다.

 

1923년 수원군 반월면에서 태어난 임학수는 경기중학교 학생이던 1940년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조선인해방동맹을 조직,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이상을 선고받았다.

 

정재억은 수원군 송산면 지화리가 본적이다. 전남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학교 선후배 학생들과 민족차별교육·식민지노예교육에 반대하다가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최병두는 1925년 수원군 음덕면 남양리 출신으로 1939년 4월 경성부 수송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서울의 일본고주파중공업주식회사에 취직하려다가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하는 것에 항의하며 회사 변소에 '천황은 바보같은 놈'이라는 낙서를 해 징역 2년을 받았다.

 

◇"그날의 흔적 잊지 않겠습니다"

 

시는 수원 출신, 수원에서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한 인물을 발굴하고 그들의 흔적을 찾아내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까지 시의 지원으로 포상된 독립운동가는 13명에 달한다. 시가 후손을 대신해 포상을 신청하면서 사라질 뻔했던 13명의 수원 독립운동가 이름이 기록에 남게 됐다.

 

지난 2008년 개관한 수원박물관은 수원의 독립운동가 발굴 중심축이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을 찾아냈다.

 

특히 독립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던 2017년에는 '독립운동 인물 발굴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를 토대로 2019년 15명의 포상을 신청해 9명이 업적을 인정받았고 2022년에도 7명의 포상을 신청해 지난해 2명이 추가로 서훈을 받았다.

 

 

◇독립 정신 격문 배포, 홍영유…항일 의지 전파, 한인택

 

지난해 애족장을 받은 홍영유는 1911년 1월 수원 서신면 전곡리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3년 반제·반전을 선전하는 격문을 배포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권우성과 함께 '노동자농민과 근로학생제군'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작성해 같은 해 2월 3~4일 이틀간 450여 매를 인쇄하고 2월 5일 밤 11시쯤 학교에 이를 배포했다.

 

 

지난해 대통령표창을 받은 한인택은 1913년 수원면 남창리 출신이다. 1932년 서울 경성농업학교에 재학하며 비밀결사 활동을 하는 등 독립 의지를 떨쳤다. 학생이던 한인택은 '소척대'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다.

 

총 18명이 가담한 모임에서 그는 병사부장을 맡아 투쟁에 관한 일을 총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그는 소척대 활동으로 체포돼 당시 검사는 징역 1년형을 구형했지만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으며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 경기신문 = 장진 기자 ]

장진 기자 gigajin2@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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