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북부지역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 실현이 중심축을 이루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가치와 비전이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방위적 개념의 구분이 아닌, 순수하게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정체성과 정주의식을 담보해내기 위한 노력들이다. <편집자주>
① 권역별 문화적 특징 담은 정체성 확립
② 거점이 필요하다! 왜 동두천인가?
③ 음악과 그래피티아트의 랜드마크
④ 평화교과서, 마을박물관 - 연천 신망리, 백학리
⑤ 평화교과서, 마을박물관 - 동두천 턱거리, 파주 마정2리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 & 균형 발전
최근 경기 북부지역을 둘러싼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 그리고 이에 따른 ‘균형발전을 통한 미래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공정, 평화, 복지’라는 3대 기치 아래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민선 7기 이재명 도지사의 도정 철학이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까닭이다.
‘특별한 희생’이란,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각종 고통을 겪어왔음을 일컫는다. 그러니,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을 묵묵히 견뎌온 경기북부를 새롭게 변화하는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 보상하겠다는 것이 이 지사의 포부인 셈이다. 또한 이 안에는 배려와 균형 발전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한 경기도의 행보는 정말이지 ‘저돌적’이라 표현할 만큼 커다란 결과물들로 보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잇따른 공공기관들의 이전 추진과 군부대 주변지역 지원사업, 규제연계형 지원정책 등을 들 수 있다.
‘군부대 주변지역 지원사업’의 경우 2017년 ‘경기도 주둔 군부대 및 접경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과 협력에 관한 조례’를 제정,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뒤 2018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도내에는 비무장지대(DMZ)와 600여 곳의 군부대가 있고, 경기북부 면적의 42.75%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3차로 공공기관 이전을 발표한 이 지사는 “앞서 두 차례에 걸친 공공기관 이전에 비해 규모가 더 큰 기관의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하더라도, 전체를 위해 특정 지역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피고 각별히 배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가안보, 수자원 및 자연환경 보전 등 각종 중첩규제로 기업 활동과 생활 피해를 받는 지역에 대한 지원정책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규제 등급은 경기연구원에서 그 강도를 분석하고, 피해 정도와 재정 점수 등을 합산해 도출했으며, 연천·포천·파주·양주·동두천 등 11개 시·군이 1등급을 부여받아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DMZ 도시로 새롭게 브랜딩해야
경기북부를 바라보는 경기문화재단의 시선은 특별했다. 이재명 지사의 도정 철학을 문화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강헌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전략적 기획 사업들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마치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다양한 사업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별화되면서도 실질적인 성과와 공감대를 형성해오고 있는 것이다.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비전 또한 괄목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성목(成木)을 심었으나 결국 죽게 되는 모습이 아니라 거칠고 메마른 땅에 씨앗을 뿌렸는데 새싹이 돋는 형상이라 표현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론, 풀뿌리 민주주의가 떠오르기도 한다.
경기문화재단의 고민은 우선 ‘경기북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데서 비롯됐다. 단순히 방위적인 개념으로 접근하고,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이라는 편협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다시금 경기북부를 문화적으로 정의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고, 이제 하나하나 가시화되면서 속도가 붙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일까? 바로 전쟁이다. 따라서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며 발생된 지역의 문제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이를 특징적으로 묶어봤을 땐 ‘접경지’란 키워드를 얻게 된다. 결국 동북부는 한강 수계권, 서북부는 접경문화권으로 나누는 것이 ‘경기북부’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란 얘기다.
하지만, 실질적인 접경도시는 파주와 연천에 불과하다. 김포는 강을 접하고 있는 접경지인데, 한수 이남이라 북부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니 경기북부를 권역으로 나눈다면, 직접 접경도시인 서북부의 파주와 연천, 이를 포함해 동두천과 의정부, 양주, 포천 등 6대 도시는 DMZ도시라 부르는 게 합당하다는 지점에 도달한다. 해서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북부를 문화적 특징으로 접근, ‘접경문화도시’, 브랜드로서는 ‘DMZ도시’라는 이름을 새롭게 정의했다.
최근 경기도가 경기만을 집중 조명한 이유도 이러한 연유에서 기인했다. 경기 서부의 특징을 경기도가 가지고 있는 해양문화, 연안문화가 집중돼 있는 지역으로 보고, ‘경기만’이라고 하는 하나의 문화적 특질로 정의한 것이다. 즉, 한강과 연결되면서 수도권의 기전문화권 안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경기만 권역에 대한 재정립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문화적 특징들을 재조명하고 발견해내기 위한 노력들은 지역 주민들의 정주의식을 끌어올리고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재단이 전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DMZ에서만 볼 수 있는 마을의 구성요소와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은 재단의 사업 방향을 가리키는 지침이 되기도 했다.
◆주민의 삶 자체 ‘지붕 없는 박물관’
무엇보다 그 중심에 주민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다. 어두운 역사를 무조건 잊자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를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삶을 유지해온 주민들이 그야말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신화를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도 했지만, 전쟁을 겪은 이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는 등 시간이 없다며 바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름하여 ‘지붕 없는 박물관’, 마을박물관이 에코뮤지엄 방식으로 진행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지역의 역사문화 생태 및 공동체 자원을 주민 스스로 탐구·보존하고 활용하는 활동의 총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마을 자체가 박물관을 지향한다. 현재 이곳에서 진행 중인 마을박물관은 연천과 동두천, 파주에 총 4곳으로, 프로토타입 형태로 해보고 있다. 단계로는 점을 개발하고 있는 상태이며 향후 선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재단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급하게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직·간접적인 여러 사례 경험상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현지 주민들의 의지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투자도 주민의 열정과 에너지가 올라오는 만큼, 주민의 호흡과 발을 맞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앞으로 마을박물관이 10여 개 정도 만들어지고, 유형들이 정리되면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국내 교육자료 활용은 물론 지역 자체가 ‘평화교과서’가 될 것이란 기대다. 외국인, 특히 한국전에 참전했던 사람들 역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들의 삶을 조망하게 되면 훨씬 더 감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들 현지 박물관들이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지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큰 네트워크 박물관이 세워진다면 어떨까? 누군가 “DMZ 관광을 간다” 그러면, 도라산전망대와 통일전망대, 땅굴, 평화누리 등만 대충 보고 오는 게 아닌, 마을박물관을 돌아보며 분단 이후의 역사를 그대로 껴안고 사는 공동체의 삶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