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북부지역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 실현이 중심축을 이루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가치와 비전이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방위적 개념의 구분이 아닌, 순수하게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정체성과 정주의식을 담보해내기 위한 노력들이다. <편집자주>
① 권역별 문화적 특징 담은 정체성 확립
② 거점이 필요하다! 왜 동두천인가?
③ 음악과 그래피티 아트의 랜드마크
④ 평화교과서, 마을박물관 - 연천 신망리, 백학면
⑤ 평화교과서, 마을박물관 - 동두천 턱거리, 파주 마정2리
⑥ 에필로그
왜 하필이면 지역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 내느냐?, 왜 우리를 구경하러 온대?, 도시처럼 아파트가 들어서야 발전하는 거 아니야? 등등. ‘DMZ도시’를 대상으로 한 마을박물관 사업 초기에만 해도 이러한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의미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상처의 모습들은 제각기 달랐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을 만큼 쓰린 심정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일부터 꺼내서 보여주자니, 그것도 마을 자체를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말이다. 그러니 가뜩이나 쇠락한 지역의 이미지만 더 나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거부감도 있었을 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로소 주민들이 이해의 단계를 넘어 조금씩이나마 미소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픈 역사지만 그저 담담히 바라볼 때, 그것은 마을의 정체성을 찿고 나아가 마을의 자원과 원동력이 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도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모든 의견이 기꺼이 존중되면서 차근차근 진행돼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애초부터 철저하게 주민들을 중심으로, 마을 안에서 논의가 이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는 금세 동참의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누구는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누구는 아직도 걱정의 마음을 온전하게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 억지로 따라오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런 면에서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강헌)의 ‘맞춤형’ 행보는 가히 박수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동두천 턱거리사람들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현호 성공회 신부는 “‘지붕 없는 박물관’의 뜻이 우리 마을 자체가 박물관이 되는 것이라는 개념은 다들 알고 계신다”며, “싫든 좋든, 타 지역과 다른 경험들을 한 것이고, 멀리 보면 약점이 아니라 우리만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데 점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동두천 턱거리마을박물관 - 미군기지가 만든 독특한 문화
미군기지 캠프 호비의 정문이 위치한 곳, 예전에는 동두천 그 어느 지역보다 크게 호황을 누렸던 곳, 그러나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곳, 바로 ‘턱거리마을’이다. 동두천의 외곽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 60~70년대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조용한 마을, 전형적인 기지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동네 역시 턱거리마을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곳에서 쾅쾅쾅 망치 소리가 울려퍼지고 기계음이 들리면서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텅빈 건물들로 보이는 어딘가에서, 마치 불러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인근에서 한 평생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어르신 한 분은 “이제 사람 구경 좀 할 수 있으려나?” 했단다.
이는 지난 2019년 9월 시작된, 경기문화재단의 마을박물관 1호점인 턱거리마을박물관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될 때의 모습이다. 박물관 건물은 1963년 사용허가가 난 이후 구멍가게와 가정집으로 이용되다가 1972년 증축 후 미군을 상대로 술을 파는 작은 클럽 ‘황금스톨’로 운영됐다고 한다. 이후 2008년 카페 ‘상제리에’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려 했으나 주거공간으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빈집이 됐다. 그리고 2019년 11월, 드디어 마을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턱거리마을박물관의 지킴이인 장남진 선생은 동네 어르신들이 오다가다 차 한 잔 하러 오시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이곳을 소개했다.
이 지역 토박이인 그는 “여기가 기지촌이다보니까 내가 자랄 때는 밤도 낮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동네에 식당도 별로 없고, 먹거리도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박물관이 생기면서) 여기서 자랐지만 몰랐던 일들을 많이 알게 됐다. 특히 요즘은 마을 어르신들이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자료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오히려 서운해 하신다”고 말했다.
김현호 신부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미군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문화가 우리의 재능이다. 혹자는 떳떳하지 못했기에, 드러내놓기 어렵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둠을 잘 활용하면, 미래를 담보해낼 수 있는 문화적 특질이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마을박물관이 들어서기 전, 턱거리마을은 잊혀진 곳이었다. 그래서 옛날 흔적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는데. 모쪼록 역사는 역사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종국엔 왁자지껄 사람내음 물씬 풍기는 활기찬 마을로 거듭나길 바란다.
◆파주 마정2리 마을박물관, ‘평화충전소’ - 대피소를 문화공간으로
“세금 들여 만들었는데, 1년 내내 비워놓는 게 아까워. 거기에 마을박물관이라도 만들면 좋을 텐데…” 지난 2019년 말, 마을 정기총회 뒤풀이 때 주민 한 명이 꺼낸 이 말은, 파주 마정2리 마을박물관 ‘평화충전소’의 출발점이 됐다.
자유로의 끝 마을 마정리. 총 4개의 마을 가운데 가장 큰 마정2리에는 2018년 현재 141세대, 27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있고,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이 마을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도 있다.
‘평화충전소’는 이러한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자는데 뜻을 모아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손’과 ‘얼굴’로 표상화됐다. 주민들의 고된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상징으로 ‘손’과 ‘얼굴’을 선택한 것이었다.
‘평화충전소’의 지킴이인 노현기 DMZ생태보전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당초 계획은 대다수의 주민들이 나온, ‘마정초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돼 마을 주민들의 얼굴 사진과 석고 손을 전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지역에 거주하는 장순일 작가를 급하게 섭외해 작업을 의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 11월 17일 개관한 ‘평화충전소’는 원래 마정2리 민방위 주민 대피시설로, 지난 2015년 지하 1.5층에 40여 평 규모로 조성된 방공호를 새롭게 꾸며 만들어진 장소다.
당시는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이 발생, 마을 주민들의 안전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국군 부사관 2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어 우리 군 당국이 응징 차원의 대북 방송을 했고, 이에 북한이 포격 도발로 맞서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던 것이다.
다행히 원래 목적대로 사용할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주민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은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러다가 4명의 전·현직 이장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마을박물관 사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사업의 내용은 주민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달됐고, 높은 호응을 이끌어내는 밑바탕이 됐다.
노현기 지킴이는 “실은 대피소라고 하는 게 주민들 모두가 어딘지 알고,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계속 문이 닫혀 있으니까, 도대체 어딘지 모르는 경우까지 있었다“면서 “대피소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이 진행된다면, 굉장히 좋은 일일 것 같고 해서 만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정2리 마을박물관인 ‘평화충전소’는 완성이면서, 아직 미완성이다.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을 양껏 충전하는 장소이기도 하면서, 앞으로 계속 마정리 이야기를 쓰고, 하나하나 채워가는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신연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