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직장인 A(27, 수원 장안구)씨는 코로나19 여파로 몇 개월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면서 덩달아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일이 잦아졌다. 업무 시간에도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계속 이어져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다반수다. 혹여나 갈등으로 번질까 싶어 차라리 집 앞 카페에서 업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A씨는 “너무 오래전에 지어진 빌라라 그런 건지 정말 발소리 진동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 진다”라며 “잠잘 때는 귀마개를 껴서 괜찮은데, 낮에도 집에 있게 되니 방법이 없어 차라리 나가는 걸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2.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B(31, 서울 양천구)씨는 퇴근 후 본격적인 위층과 소음 전쟁을 시작한다. 물건을 ‘툭’하고 던지는 소리부터 아이들이 뛰는 소리까지. 몇 년째 인터폰을 통한 항의는 물론 직접 찾아가도 봤지만, 되레 ‘우리는 조용하다,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는 답변만 돌아온다. B씨는 “출근해 있는 동안 집에 계시는 엄마는 더 큰 소음에 시달리지만, 참고 계신다”라며 “나라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별 짓을 다해봤지만, 자신들이 소음 유발자라는 인식 조차 없다. 너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발표한 지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지역별 상담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가 최다 건을 기록했다. 총 20만6320건 중 8만7355건으로 42.3%에 달하는 비율이다. 뒤이어 서울시가 4만6284건(22.4%), 인천시가 1만4006건(6.8%), 부산시가 9749건(4.7%), 대구시가 5598건(2.7%)의 순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 주요 발생 원인은 뛰거나 걷는 소리(67.6%), 망치질(4.3%), 가구를 끌거나 찍는 행위(3.7%) 순으로 집계됐다. 2% 이하 비율로 문 개폐, 가전제품 소리, 악기 등이 차지했는데 압도적으로 층간별 소음으로 고충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가 4만7107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다세대 주택이 7640건, 연립주택이 3771건, 주상복합건물이 752건 순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 발생 왜?…늘어나는 분쟁에 2004년 바닥구조 사전인정제도 도입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은 2013년 이후부터 매년 2만 건에 가까운 민원이 발생할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건설업계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층간소음의 원인을 벽식구조가 많은 우리나라 공동주택들의 특징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벽식구조는 기둥이나 보 없이 내력벽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로 더 많은 층을 지을 수 있고,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건설사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벽식구조로 지어진 공동주택은 벽체를 따라 진동이 전달돼 층간소음에 불리하다.
이뿐 아니라 2005년 이전까지 아파트 층간소음 차단 성능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었던 것 역시 원인으로 지목된다. 바닥 ‘슬래브 두께’는 층간소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인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층간소음과 관련한 구체적인 법 제도를 명시한 것은 사실상 2003년부터다. 주택건설기준규정을 개정해 바닥충격음을 차단하는 최소 성능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경량충격음은 58db 이내, 중량충격음은 50db이하가 됐다.
2004년부터는 바닥충격음 관리기준이 제정돼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LH공사 등 인정 기관이 지정한 표준 바닥 구조 5종 중 1개를 선택해 시공하게 됐다.
기준이 마련되면서 슬래브 두께는 180mm 이상에서 210mm 이상으로 증가했고, 표준바닥구조와 인정바닥 구조를 통합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
◇사전인정제도 도입했지만, 곳곳서 ‘실효성 없다’ 비판, 국토부 사후 확인제도 도입 예고
이같은 사전인정제도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바닥구조와 저감 자재 개발을 유도하고 경량충격음 차단 성능을 크게 향상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감사원은 지난 2019년 감사를 통해 사전인정제도를 검증받은 자재들이 사후에 96%에 가까운 성능 하락을 보이는 것은 물론 성능 최소 기준에 미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사실상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사전·사후 성능의 불일치와 성능 저하와 미미한 중량충격음 개선 효과 등 현 제도의 층간소음 저감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또 표준 실험동 외에 다양한 구조 및 평면에 적합한 기술 개발 유도에 한계가 있고, 뱅머신과 실생활 소음과의 괴리 문제도 상존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시공 후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을 확인하는 '사후확인제도'를 올해 7월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사업주체가 사전에 바닥충격음 차단성능을 인정받은 구조대로 공동주택을 시공하면 됐으나, 앞으로는 시공 이후에 국토교통부장관이 지정한 바닥충격음 성능검사기관으로부터 바닥충격음 차단성능 검사도 받아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주택법 개정으로 주택업계의 층간소음 관련 기술개발 및 견실시공을 유도하여 입주 후 층간소음 갈등이 줄어들고, 나아가 공신력 있는 자료가 축적되어 층간소음 관련 제도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국토부의 사후 확인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음진동 피해예방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는 “국토부가 시행을 예고한 사후 확인 제도는 바닥시공 품짐 향상을 유도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사후 측정 제도 불과하다.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 경기신문 = 박해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