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사전에 있다-문해력 유행 뒤집어보기

2023.02.02 06:00:00 13면

 

‘하나 들으면 열 깨친다.’ 공자님 시대부터 있었던 이 말, 이렇게 뒤집어보자. ‘하나라도 들어야, 열을 깨친다.’

 

전편(前篇)에서 문일지십(聞一知十) 얘기 했더니 친구가 전화했다. 첨단 교육기업이나 전문가들이 수두룩한데 낡은 그 얘기를 왜 하느냐고. 은퇴한 역사교사다.

 

말귀 못 알아듣고, 글눈 깜깜한 상당수 우리 2세들, 그 절망이 어떠할지 짐작하고는 마냥 좌절했다. 오래 전, 언론재단의 고교생 대상 미디어리터러시 강의 중 겪은 일이었다. 원래의 관심사를 밀어두고 말과 글 ‘선생’ 일 시작한 계기였다. 언론과 블로그 통해 훈수도 해왔다.

 

문일지백(-百)인들 못하랴? 그런데 하나 들어 그냥 백(100)을 아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들어야 한다. 그 하나, 씨앗 지식(의 내용)이 뭔지를 아는 것이 제대로 듣는 것이다.

 

요즘은 부모 교사 심지어 족집게 강사조차 대개 ‘말의 뜻’과 ‘언어를 어떻게 이해할지’와 같은 수용(受容)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예를 들어 교과서에 나온 제목 또는 개념)만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안중근 의사가 무슨 과(科) 치료하는 의사냐고 묻더라는 ‘유머’, 2세들에 대한 모욕이자 실례다. 기성세대 스스로 하늘보고 침 뱉기다. 언제 義士와 醫師의 구분을 가르쳐주었던가?

 

뜻 알아야 구분(區分)할 수 있다. “의사라면 의사인줄 알어!” 코미디 같지만, 실은 비극이다. ‘어른’들도 차츰 그 의사, 이 의사 구분을 할 수 없게 된다. 설명할 수 있어야 아는 것이다.

 

감(感)으로 안다고? 박사 교수님들조차 ‘감’으로 글 만들다가 황당 실수 저지르는 판이다. 학문은 또렷한 뜻의 말글(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부도 그렇다. 이 대목, 저 많은 표절(剽竊)사태와 ‘yuji 파동’의 출발점일 것이다.

 

일(事)과 물건(物), 사물의 이름을 바르게 하는(아는) 것이 공자님 정명론(正名論)의 뜻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君君臣臣 군군신신)...’ 하는 뜻이 바른 이름(정명)과 실체(그 이름의 주인) 사이의 ‘밀당’의 명분론(名分論)이다. 고대 동양의 언어학이려니.

 

사물은 불교적 명상의 틀인 인다라망(網)처럼 그물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하나 들어 열 깨치는 이치(理致)도 이런 네트워크를 상상할 일이다.

 

세상은 사물의 이름 즉 언어의 그물망이니, 말귀 모르는 공부는 참 어이없다. 말(語) 듣는 귀(耳)는 필요하다. 그 친구와 내린 결론, ‘말귀를 터주자.’였다.

 

이치 대신 답 가르쳐 주는 손쉬운 선택이 교육인가. 허나, 이는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말귀 터주는 천기(天機)의 묘책은 뜻밖에 사전(辭典)과 사전(事典) 이 두 사전에 숨어있다.

 

손에 비밀의 ‘天機’를 쥐고도 못 알아보는 이는 별 도리 없다. 聞一知十은, ‘당신의 문해력’ 유행 말고, 여기에 있다. 사전은 생각을 부른다.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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