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영화는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교본 같은 작품

2023.05.15 09:08:12 16면

113. 내 이름은 마더 - 니키 카로

 

넷플릭스 신작으로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영화 ‘내 이름은 마더’에 대해 쓰는 이유는 100퍼센트 순전히, ‘영화는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반면교사의 지점을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OTT 넷플릭스에 탑재된 수백 수천 편의 영화 가운데 얼마나 ‘사소한’ 작품들이 많은지(영화는 좋은 영화인지 혹은 나쁜 영화인지로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사소한 영화인지 아닌지로 나뉠 뿐이다)를 유감없이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온통 클리셰(clich) 덩어리이다.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거나 무리한 것이다. 그리고 앞뒤가 안 맞는다. 액션은 이런저런 영화에서 온통 다 끌어다 쓴 것이거나 익숙한 장면들을 이어 붙인 것들이다. 가장 최악인 것은 정치적 올바름과 젠더 이슈에 대한 강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자칫 이런 주제의 이야기에 대해 이후 오히려 대중들의 반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위험한 경계를 오가기까지 한다. 영화는 이래저래 참으로 못나 보인다.

 

 

주연인 제니퍼 로페즈 자체가 문제이다. 이건 완전히 한 여배우의 개인적 욕심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제니퍼 로페즈는 1969년생으로 올해 쉰 중반에 다가서는 나이다. 그런데 마치 30대 여인처럼 몸과 얼굴을 만들고(다행히 성형보다는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로) 자신이 여전히 육감적이고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것을 입증하고 과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마치 제니퍼 로페즈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만든다. 이럴 때 연출을 맡는 감독은 일종의 꼭두각시 역할밖에 하지 않거나 예정된 신만 기계적으로 찍을 뿐이다.

 

이번 감독은 니키 카로이다. 전작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뮬란’이다. ‘뮬란’은 엔딩 크레딧에 신장 위그루 자치구 탄압의 당사자인 중국 공안국에 대한 감사 표시를 남긴 것, 민주적인 홍콩 시위를 폭력적으로 탄압한 것에 대해 여배우 류이페이(유역비)가 옹호 발언을 한 것 등이 논란이 됐다. 무엇보다 원작인 애니메이션을 무리하게 수정하면서까지 영화를 할리우드 형 여성 전사 액션물로 만든 것에 대한 반감 등으로 전 세계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니키 카로는 2006년에 만든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노스 컨츄리’로 주목받았었다. 광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자신의 고향인 뉴질랜드 한 어촌 마을의 이야기, 곧 여성이 족장이 되며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 ‘웨일 라이더’로는 이 감독이 스스로 여성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 2017년에 내놨던 ’주키퍼스 와이프’는 자신과 남편이 일군 동물원을 살리고 학살 직전의 유대인들을 감춰 주기 위해 독일 장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여인의 얘기였다. 제시카 채스테인이 주연을 맡았으며 니키 카로는 의외로 스타 캐스팅으로만 영화를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번 영화 ‘내 이름은 마더’도 톱 캐스팅이다. 제니퍼 로페즈는 물론, 조셉 파인즈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함께 나온다. 이번 영화는 감독에게 ‘뮬란’의 실패에 대한 조급증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느껴진다. 로페즈나 파인즈, 베르날에게서는 자신이 퇴물 배우가 돼 가고 있음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영화나 인생이나 코너에 몰린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지면 늘 실수가 나오는 법, 악수(惡手)를 두게 된다. 제니퍼 로페즈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자신이 ‘몸이라도 건졌지만’ 조셉 파인즈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 투 마마’, ‘아모레스페로스’의 바로 그 배우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게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 됐다. 둘 다 이제 점점 조·단역 배우로 내려갈 것이다.

 

이 영화는 애초부터 별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 한 여자(제니퍼 로페즈)가 FBI 요원들에게 인디애나에 있는 외진 도시의 한 어둠침침한 안가에서 비밀리에 심문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사관들은 범죄 조직 두목들인 아드리안(조셉 파인즈)과 헥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무엇을 거래했느냐고 캐묻는다. 여인이 그들이 거래한 무기 내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괴한들이 안가를 급습해 요원 7명을 몰살시킨다. 여자와 수사관 크루즈(오마리하드윅)만이 살아남는다.

 

놀라운 것은 이때 여자는 만삭의 몸이었으며, 아드리안이나 헥터 중 한 명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는 총에 맞은 크루즈를 살려냈으며 이후 그는 여자의 조력자가 된다. 악당 손에서 간신히 살아 남은 여자는 딸을 낳는데, FBI는 그녀에게서 친권을 포기하게 만든다. 여자는 알래스카 동토의 숲에서 은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12년이 흐른다.

 

 

이 여자가 세상의 끝에서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나온 이유는 보나 마나 이 딸 때문이다. 헥터와 아드리안이 딸을 납치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자신의 남은 삶을 오로지 딸(의 안전)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것. 딸에 대한 사랑은 모든 세상의 엄마 마냥 이 여자에게도 절대적이다. 이유가 없다. 내 배 속에서 키운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 알고 보니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수차례 파병됐던 최정예 저격수였고, 1㎞ 반경 안의 사람 41명을 순식간에 처치할 수 있는 살인병기였다.

 

‘내 이름은 마더’의 가장 큰 문제는 여자가 슈퍼 우먼이라는 것이나 그것도 한 발도 놓치지 않는 명사수라는 것이나 격투기 수준이 웬만한 남자를 다 때려잡는 수준이라는 것 등의 따위가 아니다. 도대체 이 영화의 빌런, 두 남자 악당은 과연 무슨 짓을 했느냐는 것이다. 무슨 짓을 하길래 그토록 여자를 쫓고, 여자를 죽이기 위해 그 딸을 납치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 행동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려면 여자가 그들에게 현실적 위협이 돼야 하는데 12년이나 흐른 뒤에 그 문제가 드러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게 가장 중요한데, 12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외모, 몸매,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살도 찌지 않고 주름도 생기지 않는다. 더 젊어진다.

 

수사슴과 토끼를 사냥하며 살아가고 있는 여인이 새끼들을 막 낳은 늑대 어미를 차마 총으로 쏴 죽이지 못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한참 오그라들게 만든다. 늑대와 새끼들의 장면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영화의 주요 모티프로 사용된다. 할리우드가 종종 얼마나 끔찍하게 진부하고 유치한 수준의 교양 수준을 지니고 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내 이름은 마더’는 모성의 문제를 이용하고 악용한 한 여배우의 과욕(혹은 그런 여배우를 이용하려 한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과 감독)이 만들어 낸 참사다.

 

 

이 영화에서 좋은 장면은 딱 두 개다. 아드리안이 임산부 여자의 배를 칼로 찌르는 장면 하나와 헥터가 그 여자 애가 내 애냐고 묻는 질문에 여자가 누구의 애도 아니고 그냥 내 아이라고 말하는 장면 하나이다. 남자들의 잔인함과 무지함을 보여 준다. 여자는 헥터를 죽일 때 칼로 배를 갈라 죽이는데 마치 잔인하게 제왕절개를 하는 느낌을 준다. 극 중에서 여자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엄마로만 나온다. 감독의 의도가 읽힌다. 그 점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동진 kyunga101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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