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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bank] ⑨최초의 지방은행, 시중은행 전환 꿈 꾸다

DGB금융그룹
1967년 ‘대구은행’ 출범해 市 금고업무 전담
1987년 대구창투 설립해 지방산업 활성화 앞장
2000년 개인 여신지원 시스템 개발·운용 시작
2011년 DGB금융지주로… 사업 다각화 추진
사외이사 독립성강화 등 모범 지배구조 확립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제발전은 금융시장의 성장을 견인했으며, 국내 금융사들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까지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조상제한서(조선·상업·제일·한일·서울)'라 불리는 5대 은행이 주도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하며,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조상제한서' 중 일부 은행은 부실화로 인해 파산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사라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과 지주사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 재편됐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5대 금융지주가 주도하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본지는 대한민국 금융시장이 변화하는 과정이 반영된 국내 주요 금융사의 연혁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개별 금융사들이 현재까지 성장해 온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DGB금융그룹의 기반인 대구은행은 1967년 국내 최초 지방은행으로 출범했으며, '대구은행 주식갖기 운동 통장' 등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IMF외환위기를 극복했다. 2011년 DGB금융지주를 설립해 지주사 체계로 거듭난 이후 사업다각화를 추진했으나 채용비리, 비자금 논란 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2018년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태오 회장은 비은행 계열사를 편입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했다. 현재 DGB금융은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김 회장의 사임으로 인한 리더십 교체라는 새로운 변곡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출범

 

1967년 1월 정부는 연두교서를 통해 지방은행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으며, 그전부터 발빠르게 움직여 왔던 대구지역상공회의소는 연두교서 발표 1주일 만에 ‘대구은행설립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같은 해 9월 창립총회를 거쳐 10월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출범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1억 5000만 원이었으며, 1호 고객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었다.

 

1969년 4월 대구지역 외 첫 지점인 포항지점의 문을 열며 경북지역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같은 해 10월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6억 원으로 늘렸으며, 남일동 본점이 일부 완공되며 영업부를 이전했다. 이후 꾸준히 성장해 1970년 3월 총예금 50억 원을 돌파했고, 이듬해 9월 총예금 100억 원을 넘겼다. 1972년 5월 대구지역 기업체 중 최초로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75년 1월 대구시 금고업무를, 1976년 1월 포항시 금고업무를 전담하며 대구·경북 지역 전문은행으로 부상한다. 1977년 5월 증권업 겸영 허가를 취득했으며, 1978년 11월 지방은행 중 최초로 전산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해 온라인업무를 시작했다.

 

1978년 8월 주식회사 창성을 시작으로 섬유기업들이 경기 하강에 따른 부실화로 연쇄부도를 맞으면서 대구은행도 1982년부터 부실채권과 미수이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등 수익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배당률을 낮추고, 신규 채용 억제와 점포 신설을 자제하는 등 ‘감량경영’에 돌입, 불황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983년 12월 수신고 4000억 원을 돌파했다.

 

1985년 5월 수성동 본점을 준공해 이전했다. 그해 6월부터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으며 12월 자회사 대구리스를 세웠다. 1986년 12월 지방은행 최초로 총수신 1조 원을 돌파했고, 1987년 8월 지방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구창업투자를 세웠으며,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지역의 영세한 업체들을 위해 1996년 8월 대은파이낸스를 설립했다.

 

 

◇ '주식갖기운동'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IMF 위기극복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대구·경북 지역 최대 건설업체 청구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지역 중소기업들도 줄줄이 쓰러졌다. 그 결과 대구은행의 부실규모는 1997년 말 7200억 원에서 1998년 말 9156억 원으로 불어난다.

 

대구은행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자회사와 해외사무소를 폐쇄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으며,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구은행 주식갖기운동 통장’을 판매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98년 10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0억 원의 유상증자와 654억 7000만 원의 무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00년 4월 개인 여신지원 시스템(CSS)을 개발·운용하기 시작했으며,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실시했다. 2001년 6월 기업여신지원시스템(CRMS) 시행에 들어갔으며 9월 기업인터넷뱅킹 서비스를 개시했다. 2002년 12월 수신·여신·카드 등 상품별로 분산돼 있던 기존의 고객정보를 통합하는 CRM시스템 개발에 돌입했다. 2003년 9월 방카슈랑스 업무를 개시했다.

 

 

◇ DGB금융지주 출범 후 사업다각화 추진하며 확장…채용비리·비자금 조성 논란

 

2011년 5월 DGB금융지주가 출범했다. DGB금융지주는 대구은행, 대구신용정보, 카드넷 등 3개 자회사를 기반으로 ‘지역밀착형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2012년 1월 DGB캐피탈을 자회사로 편입했으며 같은 해 4월 IT전문 자회사 DGB데이터시스템을 설립했다. 2014년 9월 NH농협금융지주로부터 우리아비바생명(현 DGB생명)을 인수하며 지방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보험업에 진출했다. 2016년 8월 LS자산운용을 인수해 사명을 DGB자산운용으로 변경, 10월 자회사로 편입했다. 같은 해 12월 자회사인 DGB캐피탈을 통해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의 주주로 참여했다.

 

2018년 은행권 채용비리 수사 과정에서 대구은행에서도 채용비리 의심 사례가 적발됐다.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이 2014년 3월부터 2017년까지 각종 채용 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과 공모해 점수 조작 등의 방법으로 24명을 부정하게 채용했던 것. 박 전 행장은 이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함께 기소된 전·현직 임직원 13명도 범행 가담 정도에 따라 벌금 또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또한 박 전 행장은 취임 직후인 2014년 4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산 뒤 5%의 수수료를 주고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을 통해 3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 역대 임원들의 발자취

 

초대 대구은행장을 맡은 김준성 전 행장은 1975년까지 재임했다. 이후 1975년부터 1981년까지 남옥현 전 행장이,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정달용 전 행장이 차례로 행장직을 역임했다. 1984년 취임한 권태학 전 행장은 1989년 이상경 전 행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1992년 이상경 전 행장의 뒤를 이어 홍희흠 전 행장이 취임했으며, 1996년 서덕규 전 행장이 행장직에 올랐다. 2000년 취임한 김극년 전 행장은 2005년 이화언 전 행장에게 바톤을 넘겼다.

 

2009년 취임한 하춘수 전 회장은 2011년 DGB금융이 출범하며 대구은행장과 지주 행장직을 겸임했다. 2014년 하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박인규 전 회장 또한 2018년까지 행장직과 회장직을 겸임하다 채용비리·비자금 조성 등의 논란으로 사임했다.

 

 

◇ '구원투수' 김태오 회장 취임 후 시중銀 전환 추진…새 리더십도 찾아야

 

2018년 5월 채용비리와 비자금 조성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DGB금융에 김태오 회장이 취임했다. 취임 후 2020년까지 대구은행장을 겸임했던 김 회장은 2020년 임성훈 전 행장에게 행장직을 넘겼다. 이후 2022년 말 황병우 대구은행장이 선임됐다.

 

‘DGB의 구원투수’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김 회장은 취임 당시 그룹 경영비전으로 ‘DGB Get Best(▲하나의 DGB ▲신성장동력 창출 ▲신뢰받는 파트너 ▲일류 금융그룹)을 제시했다. 그는 DGB금융의 경영 혁신을 추진하며 새로운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10월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하고 2021년 8월 주식투자 플랫폼 기업 뉴지스탁을 자회사로 편입하며 DGB금융의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은행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개선했다. 그 결과 DGB금융은 총자산 100조 원, 당기순이익 4500억 원에 이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했다.

 

또한, 2019년 금융권 최초로 ‘CEO 육성·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 방안을 마련해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연임에 성공했다.

 

2021년 12월 김 회장 등 4명의 대구은행 임직원들이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20년 4월부터 10월까지 대구은행 캄보디아 현지법인 특수은행의 상업은행 인가 취득을 위해 캄보디아 금융 당국 공무원 등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미화 350만 달러(약 41억 원)를 현지 브로커에게 건넨 혐의를 받았다.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7월 시중은행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인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당초 2023년 내 신청을 목표로 준비 중이었으나 8월 대구은행 직원의 고객계좌 불법개설 사실이 적발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외부 제보 등을 통해 대구은행 직원 수십 명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개설한 정황을 파악하고 긴급검사에 착수했다. 검사 결과 대구은행 56개 영업점에서 약 2년 동안 1552명의 고객에 대해 1662건의 증권계좌를 부당 개설한 것으로 나타나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해 내부통제 소홀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

 

DG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는 지난 12일 “김 회장이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회추위에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은 회추위에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고 역동적인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회추위는 조만간 차기 회장 롱리스트(1차 후보군)를 확정할 방침이다. 내부 출신인 황병우 대구은행장과 임성훈 전 대구은행장을 비롯해 이경섭 전 농협은행장,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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