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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bank] ④‘우리’ 안에 잠재된 125년의 헤리티지

우리금융그룹
1899년 설립한 ‘대한천일은행’에 뿌리 두고
상업·한일은행 대등합병된 ‘한빛은행’이 전신
첫 민영화·증권거래소 1호 주식 상장 기록도
사회책임 완수·신뢰 높이기 위해 상생금융↑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 중장기 계획에 ‘집중’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제발전은 금융시장의 성장을 견인했으며, 국내 금융사들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까지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조상제한서(조선·상업·제일·한일·서울)'라 불리는 5대 은행이 주도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하며,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조상제한서' 중 일부 은행은 부실화로 인해 파산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사라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과 지주사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 재편됐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5대 금융지주가 주도하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본지는 대한민국 금융시장이 변화하는 과정이 반영된 국내 주요 금융사의 연혁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개별 금융사들이 현재까지 성장해 온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금융그룹은 국내 최초 은행계열 금융지주사로, 자회사인 우리은행 또한 국내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깊은 125년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의 금융사 구조조정을 거치며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된 한빛은행이 전신이다.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의 원활한 회수를 위해 설립된 우리금융지주는 자회사 매각에 따라 한 차례 해체됐다가 2019년 다시 설립됐다. 2021년 말 완전민영화에 성공한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기업금융 명가'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 우리은행의 두 뿌리,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은 1899년 1월 고종황제의 내탕금 등 대한제국의 황실 자금과 정부 관료, 조선 상인이 납입한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에서 비롯됐다. 1909년 7월 우리나라 민족은행 최초의 근대식 은행건물 광통관(현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을 지었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 대한천일은행의 이름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상업은행’으로 바뀌었고, 이후 조선실업은행, 대동은행, 삼남은행 등을 흡수합병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은행명이 변경된다.

 

1972년 국내 시중은행 최초로 민영화된 한국상업은행은 1977년 서울-부산간 온라인 업무를 개통했다. 1984년 서울투자금융을 인수한 뒤 1989년 상은리스와 상은시스템, 1991년 상은신용관리를 설립했다. 1992년 서통투자자문을 인수했으며 1996년, 상은파이낸스를 세웠다.

 

 

우리은행의 또 다른 뿌리인 한일은행의 전신은 ‘조선신탁’ 주식회사와 ‘조선중앙무진’ 주식회사다. 1932년에 설립된 조선신탁은 부동산, 유가증권, 금전 신탁자금 운용전문 금융회사로 기업금융을 담당했으며, 1946년과 1950년 조선신탁은행, 한국신탁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36년 설립된 후 서민금융과 중소기업 금융을 주로 담당했던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는 이후 한국상공은행으로 변경됐다. 1954년 한국신탁은행과 한국상공은행의 합병을 통해 한국흥업은행이 탄생했으며, 1956년 3월 한국상업은행과 함께 증권거래소 1호로 주식 상장했다.

 

한국흥업은행은 1960년 은행 민영화 조치에 따라 정부가 소유주식을 삼성물산 계열에 매각하면서 한일은행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이후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민간 지분이 정부에 다시 회수되며 국유화됐다가 1981년 다시 민영화됐다.

 

 

  

◇ IMF로 위기 봉착…한빛은행 거쳐 우리은행으로

 

1997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인해,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쳐왔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도 부실은행에 포함되는 등 어려움에 처했다. 1999년 1월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대등합병을 통해 자본금 4조 3725억 원의 한빛은행으로 재출범했다. 한빛은행은 2001년 당기순이익 7129억 원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2001년 12월 평화은행을 흡수합병한 이후 2002년 5월 우리은행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2001년 4월 정부는 금융위기로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한빛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 등을 자회사로 하는 우리금융지주를 설립했다. 우리금융지주는 당시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로 최대주주는 예금보험공사로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소유했다. 

 

2004년 9월 LG투자증권의 지분 21.2%를 취득하는 인수협상이 타결됐으며, 이후 11월 LG투자증권을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로 편입했다. 같은 해 12월 우리은행은 은행권 최초 ‘우리 제1호 사모투자전문주식회사’ 사모투자펀드(REF)로 정식 등록됐다.

 

2005년 4월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이 합병해 만들어진 우리투자증권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11월 금융권 최초의 복합금융점포인 ‘우리금융프라자’가 서울 명동에 개점한다.

 

◇ 공적자금 회수 과정서 해체…우리은행에 흡수합병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민영화를 수차례에 걸쳐 추진했고, 2014년 우리금융지주의 14개 자회사를 지방은행, 증권, 우리은행의 3개 그룹으로 나눠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4년 11월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으로 흡수합병됐다.

 

2015년 4월 은행권 최초로 인터넷 전용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9월 국내 첫 모바일전문은행 ‘위비뱅크(WiBee Bank)'가 출범했다. 2016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29.7%의 지분을 매각하며 민영화에 성공했다. 2017년 4월 공식 출범한 케이뱅크의 대주주로 참여했으며 10월 국민연금공단의 주거래은행 및 주식부문수탁은행으로 선정됐다. 

 

2017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중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된다. 우리은행이 2015년부터 2년 동안 불합격권에 속해 있던 고위 공직자나 임직원, 고액 거래자 자녀들을 합격시켰던 것. 이와 관련해 2020년 3월 이광구 전 행장에게 징역 8개월이 확정됐다. 우리은행은 이후 부정입사자들을 퇴사조치했으며, 피해자 구제방안의 일환으로 2021년 상반기 특별 수시채용을 통해 20명을 선발했다.

 

 

◇ 다시 설립된 우리금융…'DLF·라임 사태' 수면 위로


2019년 1월 우리금융지주가 재출범하며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의 완전자회사로 편입됐다. 같은 해 2월 우리금융지주는 한국거래소 및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8월엔 동양자산운용을 인수, 우리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같은 시기 우리은행은 ‘우리WON’뱅킹 서비스를 오픈했다.

 

9월엔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카드 지분 100%, 우리종합금융 지분 59.83%를 인수 후 두 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했으며 10월엔 롯데카드 지분 20%를 획득했다. 이후 12월 ABL글로벌자산운용과 국제자산신탁을 인수한 우리글로벌자산운용, 우리자산신탁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2019년 채권금리가 급락하면서 우리은행이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했던 DLF에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부실 등이 불완전판매로 이어졌다고 지적하며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에게 문책경고 징계를 내렸다. 손 전 회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같은 해 10월엔 라임자산운용이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하면서 1조 6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하는 ‘라임 사태’가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등 발견된 위법사항에 대한 책임을 물어 우리은행에 사모펀드 신규 판매 3개월 정지와 과태료 76억 6000만 원을, 손태승 전 회장에게 문책경고 징계를 내렸다. 

 

2021년 12월 우리금융그룹은 23년 만에 완전민영화에 성공했다. 이후 2022년 1월 NPL투자전문회사 우리금융F&I가 공식 출범했다. 

 

같은 해 4월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직원 A씨가 700억 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심에서 검찰은 징역 35년과 추징금 약 292억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2023년 2월엔 벤처캐피탈 다올인베스트먼트를 인수, 우리벤처파트너스로 사명을 변경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 역대 경영진 발자취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재탄생한 한빛은행의 초대 행장은 김진만 전 행장이 맡았으며, 김 전 행장은 1999년부터 2001년 3월까지 한빛은행을 이끌었다. 2001년 4월 취임한 이덕훈 전 행장은 2004년 3월까지 재직했다.

 

2004년 이덕훈 전 행장의 뒤를 이어 황영기 전 행장이 행장직에 올랐으며, 2007년과 2008년 박해춘, 이종휘 전 행장이 차례로 선임됐다. 2011년 선임된 이순우 전 행장은 2014년 이광구 전 행장에게 행장직을 넘겼고, 이후 2017년 손태승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취임한다.

 

2019년 우리금융의 완전민영화 이후 손태승 당시 행장이 회장으로 내정되며 회장-행장 겸직체제가 운영됐고, 이후 2020년 권광석 전 행장이 우리은행장을 맡았다. 2022년 이원덕 전 행장이 권 전 행장의 뒤를 이어 우리은행장에 올랐다. 

 

 

◇ 임종룡號 출격…'기업금융 명가 재건' 박차

 

2023년 3월 임종룡 회장이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신뢰받는 우리금융 ▲빠르게 혁신하는 우리금융 ▲경쟁력 있는 우리금융 ▲국민들께 힘이 되는 우리금융 등 4가지 경영 키워드를 제시했다. 

 

임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은 비은행 강화 및 기업금융 확대,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 중장기 계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상생금융을 확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신뢰도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7월 기업금융 전문가인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선임하면서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2027년까지 전체 대출 중 기업대출 비중을 60%까지 확대하고, 은행권 기업금융 시장점유율 1위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M&A와 함께 우리종합금융에 대해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보유 중인 비은행계열사 강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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