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詩와 함께 하는 오늘]사랑의 플래카드
사랑의 플래카드 /권옥희 그래, 여름이 올 때면 한번쯤 사랑을 앓아야지 맨살 같은 목백일홍 가지에 붉은 꽃잎 하나 둘 피기 시작해서 사랑하는 것들 다 삼킬 듯 한여름 절정으로 피어서 ‘사랑’이라는 붉은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슬픔으로 꾹꾹 눌러쓰는 편지처럼 하나 둘 꽃잎 져서 바닥에 떨어지면 또 하나 둘 꽃잎 피어서 꽃송이를 이룬 채 백일을 사랑이라고 꼭꼭 보듬어 안았다가 가슴 새까맣게 타서 그리움도 모두 지워지고 없어질 때면 너는 어디에 가 있을까? 하늘이 높아 꽃잎 진 길은 붉어지고 눈물진 길에서 보게 되는 너는 흔적도 없이 붉은 가슴에서 눈물로 씻겨가 그 여름 사랑이라는 붉은 플래카드가 내려진다. ■ 권옥희 1955년 경북 안동 출생. 1992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강서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마흔에 멎은 강』, 『그리움의 저 편에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