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May Day. 저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기념일은 아닙니다. '하루 8시간만 일하게 해달라'는 지금으로선 당연한 요구를 쟁취하려 했던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하루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지위 향상을 위한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내릴 수 없다. 정치, 사회적으로 양분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도 정치, 사회적 분쟁으로 결말이 난다. 자본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즉,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할지라도 노동(Labor)은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며 부의 원천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소중한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들은 노동자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워해야 될 일이며, 이러한 노동자의 노동을 기념하는 날은 노동절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작은 같았다. 다른 나
지난 13일 오전, 일본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발전소 부지 내 탱크에 저장해오던 다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각료회의에서 최종확정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과 유엔도 유감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내에서의 ‘퍼블릭 코멘트’라는 의견공모에서 조차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전 세계인을 피폭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난하며 70%가 바다 방류를 반대 하였지만 이러한 모두의 우려섞인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독선적 판단임이 분명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명백한 전범국가이다. 본인들의 군국주의 야망에 사로잡혀 전 세계, 특히 동아시아 국가에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일으켜 전 세계를 불행의 그늘로 몰아넣은 것이 고작 70여 년 전이다. 전범국으로 본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며 국제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 본인들의 과오를 씻어내야 함에도 이번에 일본은 또다시 타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이른바 ‘또 다른 방식의 세계대전’으로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전범국가는 어떠한 태도인가?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1980년 5월, 광주는 뜨거웠다. 군부쿠테타로 정권을 찬탈한 반민주 세력에 대항하여 광주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시민들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적 염원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결국 자국민을 향한 무차별 발포를 진행했고, 이는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비극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상처가 곪고 터져 나가도록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외침을 아직도 우리는 정치적 논쟁거리로 만들며 그들의 상처를 보다듬어 주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는 나왔으나 가해자는 나오지 않은 부끄러운 현실...법정기념일까지 지정되어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두 개의 정치적 시선...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야 우리는 광주에 뿌려진 뜨거운 피를 닦아줄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라 말 하지마라. 멀지 않은 이웃의 나라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으니 바로 ‘미얀마 군부쿠
얼마 전 미국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가 한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꼽았다. 블룸버그는 ‘2021 혁신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를 산정한 결과 한국이 지난해 2위였으나 한 계단 상승하여 1위를 탈환했고, 블룸버그 혁신지수가 발표된 9년 동안 우리나라는 7번 1위를 차지했었다 보도하며 대한민국의 혁신성을 극찬했다. 미래사회의 핵심 동력은 무엇일까? 당연히 혁신성과 창의성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 하지 않는다.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피터드러커(Peter Drucker) 교수는 혁신에 대해 “참신한 생각(bright idea)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만 기대는 것은 잭팟을 노리며 슬롯머신에 머무는 도박꾼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혁신은 고되고 지속적인 노동에 가깝다.”라고 말하며 혁신을 위해 고되고 지속된 노력을 멈추지 말 것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물적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가 경제성장을 견인한 원동력은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고급 인적자원의 개발에 대해 투자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적자
지난 15일, 영국의 보리스 총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대면 회담 방식으로 오는 6월 개최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한국, 호주, 인도를 공식초청했다. 게스트 초청일지라도 한국이 처음으로 대면 참석하는 G7 회의이며, 영국은 차후 G7을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10개국(D10)으로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서방국가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이제는 개발도상국을 넘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6.25전쟁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도 전쟁 직후 “대한민국이 전쟁에서 회복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도 GDP 91.6달러로 필리핀은 동경의 대상일 정도로 세계 최빈곤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한강의 기적” 이제 이 말은 전 세계인에게 낯선말이 아니다. 아니 이제는 기적을 넘어 경제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고 성장률을 달성했고, GDP 순위는 세계 10위 내로 올라섰고 국가부채도 GDP 대비 45.5%에 그쳐 선진국 평균인 131.
지난 15일, 경기 김포소재 어린이집에서 원아 9명을 학대한 혐의로 어린이집 교사 2명이 경찰에 입건되는 가슴 아픈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들은 지난 3∼7월 경기도 김포시 한 어린이집에서 원아 9명을 여러 차례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들의 이 같은 행각은 피해원생 아버지가 지난 6월 아이의 목 부위에 멍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린이집 CCTV를 확인하며 드러났다. 조사 결과 이들은 원아를 강하게 밀치거나 때린 것으로 파악됐는데, 피해자 중에는 생후 20개월 된 원생도 있었다고 한다. 분명히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좀 더 편리한,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얻기 위한 경쟁은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이젠 전통적 사회질서와 다른 맞벌이가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고, 이에 따른 육아는 가정의 몫이 아닌 사회의 몫이 되었다. 따라서 가정에서의 육아는 이제 거의 사라지고 이를 대신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맞벌이 시대에 필수적 기관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자본주의 경제생활에 꼭 필요한 이 기관을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가? 맞벌이 가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취약한 위치인 을(乙)임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50년 전 평화시장 피복 공장의 재단사인 22살의 꽃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경제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죽어가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이다. 50년 전 자기 한 몸을 바쳐 인간의 존엄을 위해 열사의 분신으로 표현한 노동존중의 울부짖음에 우리는 함께 눈물 흘리고 기억하며 추모한다. 전태일 열사 피의 댓가로 우리사회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이제는 떳떳이 세계무대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숨은, 아니 숨겨진 전태일이 존재한다. 과연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노동환경은 변화 하였는가? 전태일 열사는 뜨거운 피를 우리 사회를 위해 바쳤건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피지도 못하고 진 노동자의 꽃이 피어있다. 정부 통계자료를 보면, 작년 한 해 202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고, 올 상반기에도 벌써 1101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수도권의 아파트값 폭등으로 얼마 전까지 홍역을 앓아왔다. 현재 아파트 매매에 대한 폭등은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추세이나 이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할까? 전세가격이 서울기준 68주째 끝없이 상승하고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전화 올까 봐 세입자가 전전긍긍하거나, 전셋집을 찾기 위해 공인중개사에 성공보수도 제안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지난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김현미 장관은 전세시장 혼란에 대해 아파트 가격 폭등 이후 또다시 전세대란에 대해 송구하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이제는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은 고사하고, 살 권리마저 빈부의 격차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 상황인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어두운 그림자 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살고 있다. 현재의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시장의 기능이 정부의 통제력보다 강하다 보니 이 시스템에서는 당연히 시장의 역할인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부를 쟁취하는 것도 기회는 공평하게 가지되 쟁취하는 방법과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를 쟁취하는 이른 바 차별이 필수이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이 자본주의 시스
지난 14일,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 되었다.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초등학생 형제가 평소라면 학교에 있어야 했을 평일 점심, 단둘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자 교육당국은 비대면 수업으로 교육을 진행 해야만 했고, 부모가 자녀들을 돌보지 못하는 이른바 ‘돌봄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매끼 식사를 해결하려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으로 코로나 시대가 빚은 사회적 참변이라 할 수 있다. 더욱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은 이미 이웃들이 그동안 3차례나 아이들이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신고했고, 담당 구청 및 학교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강력한 제제도 없었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가 아닌 어머니의 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관계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동학대 사실을 모든 기관에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제각각 맡은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 필자는 교육부, 복지부,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편 7~10절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브랜드가 생길만큼 세계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고 이에 대한 전 세계적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그만큼 빠르고 선제적인 대처가 세계적 귀감이 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를 입증해 주듯이 얼마 전 발표한 한국 경제 성장률을 보면 전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국가 중 대한민국이 1위라는 것은 전 세계의 코로나로 인한 성장률 저하는 세계적 차원의 위기라 할지라도, 그만큼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의 대처 및 극복에 있어서도 정부의 역할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방역에 성공했다고 전 세계로부터 칭송받는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나 방역의 심각한 위기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다 종교계와 관련이 있었다. 필자도 기독교인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니만큼 종파나 이단임을 이야기 하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