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91년 5월 투쟁 일지] 공안통치에 맞선 13인의 기록
91년 5월 투쟁은 당시 명지대 학생이었던 강경대 열사가 총학생회장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숨지면서 일어난 노태우 정권에 대한 대규모 저항을 일컫는다. 강경태 사망 사건을 통해 노태우 정권의 대한 분노는 1991년 4월 29일 박승희 전남대 학생 분신으로 이어졌다. 1987년 6월 항쟁의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과 겹쳐지면서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성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이끌어 냈다. 5월 투쟁은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한 대중투쟁으로 평가 받는다. 학생·노동자·농민 등 민중들이 전국에서 부문운동 조직을 매개로 단결했다. 이로써 '민중주체의 형성 가능성'을 보였다. 참여자들은 민족자주, 민중권력, 노동자권력, 민중해방 등 구회를 외치며 대안권력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학생인권과 노동기본권 보장으로 인권담론의 지평이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 1991년 4월 ▲ 4.26 = 강경대 명지대 학생 총학생회장 석방 요구 시위 중 경찰 진압에 의해 사망 ▲ 4.27 = '강경태 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분쇄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결성 ▲ 4.29 = 박승희 전남대 학생 강경대 사건 규탄집회 중 분신 ◇ 5월 ▲ 5.1 =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