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답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스님은 너무 많은 경전과 설법에 지쳐 제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무식해진 것이다. 너무 많이 배우면 병이 된다는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실례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지식이든 무엇이든 새로 맞닥뜨리는 것은 실제로 통해야지 쌓아놓기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경전이나 지식은 돈이 되는 무슨 물건이 아니다.
쌓아놓는다고 야, 저 사람 부자다 하고 인정해주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머리가 너무 무겁고 복잡해져 처리 속도만 늦어질 뿐이다.
하드 디스크를 설치한 컴퓨터를 이러저러한 데이터로 꽉 채워보라. 뒤지는 속도가 너무 늦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컴퓨터와 다른 점은 어떤 정보를 아주 간략하게 줄이거나 거의 용량을 차지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통하는 것이다. 어떤 지식에, 논리에, 원리에 통하면 이미 쌓여 있던 지식마저 깨끗이 정리하여 더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사람의 이러한 능력을 본따 요즘에는 컴퓨터에서도 압축 화일이라는 게 나왔다. 작은 플로피 디스크에 아주 많은 화일을 집어넣을 수 있는 방법인데 그러나 아직은 사람의 머리카락 끝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여튼 제 덫치기를 즐기는 범인과 너무나 자유로워서 오히려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선사들의 사유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 한 생각 돌리는 것뿐이다.
이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 사람을 위해 짤막한 수수께끼 하나를 내본다.
* 점선 아홉 개를 늘어놓은 것(도표 생략)
위의 아홉 점을 이어지는 직선 네 개로 모두 연결하는 문제다. 한번 펜을 대면 끝이 날 때까지 떼지 않아야 한다.
답은 무업 편의 끝에 그려놓았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풀면서 수많은 독자들은 배휴를 안내했던 스님이 겪었던 자기의 덫, 자기 경계에 스스로 걸려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은, 황벽 스님같은 분이라면 이까짓 문제를 왜 실어 아까운 지면을 낭비하느냐고 필자를 나무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