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북부 지역, 특히 접경지역은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 27일 이후 지금까지 72년 넘게 국가 안보를 위해 제약을 받아왔다. 중첩된 규제로 인해 주민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오지나 다를 바 없는 환경을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정부는 2011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했고 2019년엔 이 계획의 일부를 수정했다. 투자실적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민자 사업들을 과감히 조정하고 사업추진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남북 교류협력 기반조성 ▲생태·평화 관광 활성화 ▲생활 SOC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 ▲균형발전 기반구축 등의 사업이 추가됐고 2030년까지 13조2000 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접경지역을 수도권정비법상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는 것이다. 수도권정비법의 제정 사유는 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및 산업 집중을 억제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 개발을 저해하고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를 가속화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지난 9월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과 김성원 국회의원(국민의힘,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아직도 때때로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 시간에 쫓겨 문제지를 다 풀지 못하거나, 백지의 답안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꿈이다. 깨고 나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보며,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학교를 떠났지만, 여전히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문제지를 풀고 있는 수험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어른이 되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시험은 늘 삶의 다른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점수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어떤 지점을 넘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들 앞에서 흔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선택을 복잡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지게 되는 순간도 있다. 기대보다 실망을 안겨주었던 자리가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큰 기대를 품었던 일이 나와 맞지 않는 자리임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고학력 청년 장기 실업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경기 부진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대내외 환경 악화로 인해 고용시장 흐름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졸 신규 취업 희망자들과 경력직을 원하는 대기업의 고용 방향 간의 미스매치 현상도 구조적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의 고용 정책은 변화된 환경에 맞도록 새판짜기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기업들이 서둘러 투자·고용 약속을 과감히, 선제적으로 이행하는 게 급선무다. 지난달 전체 실업자(65만 8000명) 중 장기 실업자 비율은 18.1%였다. 같은 10월 예전 통계와 비교할 경우 1999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최고 수준이다. 외환위기 여파가 계속되던 1999년 10월(17.7%)보다도 높았다. 통계상 호전되는 듯 보였던 청년층(15~29세) 고용률과 실업률마저 나빠지면서 청년 고용시장의 장기적 침체 우려마저 나온다.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지닌 20∼30대 중 장기 실업자는 3만 5000명으로, 지난해 9월(3만 6000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많다. 국가통계포털(KOSIS) 등에 따르면 구직활동을 6개월 이상 했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지난달 기준 11만…
소사역 앞이 분주합니다. 성모병원 쪽으로 뚫린 굴은 삼 번 출구입니다. 장례식장도 가톨릭대학도 그쪽에 있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재개발 공사가 한창입니다. 집은 뜯기고 땅은 파였습니다. 재개발 공사로부터 자유로운 건물은 성당뿐입니다. 그래설까요. 그쪽을 향해 굴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는 늦가을이 만연합니다. 아니, 설익은 초겨울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까요. 일 번 출구 역시 붐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사지구대 방향인데, 길을 건너면 오십 층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나이 지긋한 동네를 헐어내고 새롭게 지은 젊은 아파트 단지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도시재생이라고 부릅니다. 주거재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새것이 대접받습니다. 번뜩이고 아찔한 신상일수록 귀한 몸값을 받습니다. 집도 옷도 차도 신상이라야 값을 쳐줍니다. 패션도 기술도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묵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게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신상이 아닌데도 대접받는 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뿐입니다. 골동품이거나 보석이거나 주식이거나 땅문서가 아니고선 내밀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나섰으
꼬꼬마 한의사 시절, 내가 인턴을 했던 병원은 중풍 전문병원이었다. 급성기 뇌경색·뇌출혈 환자들이 끊임없이 입원했고, 인턴들의 호출기는 하루에도 수십 번 울려댔다. 어느 날 점심 두어 숟갈을 뜨려던 순간, 호출기가 울렸다. ‘왼쪽 대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된 중대뇌동맥 뇌경색 환자가 L-tube를 또 뽑았다는 연락’이었다. 전날에도 두 번 뽑은 분이었다. 병실로 올라가 튜브를 삽입하려 하자, 환자는 마비되지 않은 손으로 튜브를 잡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다시 넣으면 또 빼고, 실어증으로 인해 6인실 병동 전체가 울릴 만큼 우우우— 하고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 다섯 번, 여섯 번. 잠시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까지 거부하는데 꼭 넣어야 할까?” 그러나 당시 나는 열정적인 인턴이었다. 병실이 쩌렁쩌렁 울릴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무 힘들지만,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끼어야 좋아질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살아봐야 하잖아요.....”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지 5분이 지났을까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몸부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다시 L-tube를 삽입했고 그는 영양섭취가 가능해졌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확신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 중 큰 폭으로 늘어난 ‘아동수당’과 관련해 ‘수도권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2일 비수도권 아동수당을 우대하는 ‘지역별 차등 지급’ 예산안이 포함된 2026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로 인해 경기 66만 명·인천 14만 명 이상의 아동이 추가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수도권 기초생활수급자 아동들의 불이익에 대한 무대책이 문제다. 보완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아동수당 지급’ 예산은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매월 1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1조 9588억 2300만 원에서 무려 26.7%(5233억 4600만 원) 증액시킨 2조 4821억 6900만 원이다. 예산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급 대상 연령을 만 8세 미만(0〜7세)에서 만 9세 미만(0〜8세)으로 확대’, ‘비수도권 아동 5000원, 인구감소지역 중 우대지역 아동 1만 원, 특별지역 아동 2만 원’, 인구감소지역에서 지역 화폐로 아동수당을 지급할 경우 1만 원을 각각 추가 지급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수도권은 지급 대상 연령이 만 9세
시장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고 관객 동원력은 떨어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른바 종(種) 다양성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연말이고, 해를 넘기기 전에 ‘묵은’ 영화들을 밀어내려는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배급을 지원받은 독립영화의 경우 약속된 규정에 따라 해를 넘기기 어려울 작품도 꽤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수작인 작품들,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눈에 띄는 외화들이 많다. 예컨대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미국 션 베이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대만 영화가 요즘 뜨고 있다. 중국 제작의 블록버스터 '난징사진관'은 중국에서는 8452만 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관객 수가 나오고 있는 작품이다. 30억 위안, 6160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3만 명 선을 가까스로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식 ‘국뽕’이라는 평가, 혹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고 편견이나 오해에 기반한 혐중 정서의 영향을 받는 탓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 역시 꽤 괜찮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1937년 난징 대학살의 비극을 올바르고, 무엇보다 품위 있게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