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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역사 ‘기지촌’에도 봄은 오는가?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튼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작은 방 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뵈지 않네…(중략) -김민기의 기지촌 중에서-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력 부대인 미2사단의 주둔지가 된 동두천. 이렇다할 산업이 발달하지 못해 대다수의 주민들이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동두천은 파주, 의정부 등과 함께 경기북부지역의 대표적인 기지촌으로 손꼽히며 전후 세대들의 애환과 슬픔을 담은 채 성장해 왔다.

 

전쟁 직후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사람들은 미군들이 나눠주는 음식물이나 심지어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찬반으로 끼니를 때웠고 몇몇 사람들은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 미군들이 버린 물건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두천 주민들은 미군들에게 갖은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숨죽이며 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미군기지는 동두천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각종 규제와 제한으로 동두천을 지배했다.

동두천 절반이 미군기지… 70%가 ‘군사보호구역’
공여지 반환후 신도심 · 영어마을 조성 기대도 잠시
캠프 케이시 등 반환지연에 “정부 수수방관” 비난


◇미군기지의 천국

동두천에는 현재 6개의 미군기지가 있다.

캠프 케이스, 캠프 호비, 캠프 님블, 캠프 캐슬, 캠프 모빌, 짐볼스 등으로 이들 6개 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동두천의 면적은 40.63㎢.

동두천 행정구역 전체 면적이 95.68㎢이니까 42%가 미군 공여지인 셈이다.

여기에 군사시설보호구역까지 합하면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개발제한 구역인 셈이다.

도시 전체가 미군기지나 다름없다.

동두천은 한때 미군기지 앞에 있는 보산동이 지역 경제의 절반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지금도 미군 관련 경제 규모가 지역 내 총 생산량의 30%에 육박한다.

과거 보산동은 미군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동두천은 물론 의정부와 파주의 미군까지 밀려들어 2만명 이상의 병사가 북적였고 시청 보건소에서 정기 검진을 받는 직업 여성들이 6천명을 웃돌던 시대가 있었다.

1971년 미 제7사단이 철수하면서 위기를 맞았던 동두천은 1974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포드가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백지화 하면서 상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동두천은 미군기지에 의존해 생존해 오고 있다.

◇미군기지로 인한 상처

1994년 동두천과 양주군의 통합론이 대두될 당시 양주 군민들은 동두천이 기지촌이라는 이유로 통합을 반대했다.

기지촌이라는 낙인은 동두천의 발전을 가로 막았다. 동두천 인구가 20년 동안 고작 1만명 느는데 그친 것도 기지촌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최근들어 동두천은 갈수록 위기를 맞고 있다.

9·11 테러와 미순·효순 사망 사건 등으로 인해 미군이 영외 출입을 삼가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된데다 미2사단 병력 3천600명이 이라크에 파견됐기 때문이다.

동두천 주민들은 미군이 떠나면 3천300여명에 달하는 미군부대 근로자와 250여개에 달하는 미군상대 업체, 그곳에서 근무하는 1천500여명의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경제적인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미군은 동두천에 많은 상처를 남겨두게 됐다.

 

 

◇공여지개발 동두천의 새로운 기회될까

동두천시는 도시 전체면적의 42%에 달하는 공여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위기에 빠진 동두천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미군 공여지를 개발한다는 계획아래 용역을 의뢰해 시가지와 가까운 캠프 님블, 모빌, 캐슬에는 ‘신도심’을 만들고 캠프 케이시는 영어마을 등이 들어서는 ‘글로벌 타운’으로 만드는 한편 캠프 케이시 동쪽 산림에는 ‘대학촌’을, 캠프 호비와 짐볼스 훈련장에는 ‘골프 빌리지’를 조성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받았다.

또한 공여지 개발 파급효과를 총 1조8천억원 규모로, 총 고용 효과를 1만8천명 규모로 잡고 있다.

공여구역 주변 지역인 상패, 양주 은현 지구에 국제자유도시를 건설해 첨단산업 유치, 남북교류지원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 2월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동두천 주민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는 등 각종 규제가 완화되는데대 공여지에 대한 자치단체의 매입 비용 부담이 줄어들고 각종 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며 자치단체 주도의 개발사업에서 소요 자금의 조달도 용이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에 의존해왔던 동두천이 미군과 상관없이 홀로서는 기회가 왔다고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캠프 케이시와 호비의 공여가 2011년 이후로 늦춰지면서 동두천의 보랏빛 꿈은 잠시 접어두게 됐다.

과거 동두천은 시를 관통하는 국도 3호선의 우회도로를 만들기 위해 미군 측과 무려 4년이나 줄다리기해야 했고 캠프 케이시의 땅 1천40평에 도로를 개설하는 비용으로 무려 34억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같은 과거 전력은 동두천이 미군에게는 전략의 요충지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군이 캠프 케이시와 호비를 훈련장으로 활용하며 극소수의 경비 병력만 주둔시킬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두천은 개발도 어렵고 미군 관련 경제도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미군 재배치를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는 정부가 평택지원 특별법은 제정하면서도 정작 철수 지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반환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캠프 케이시와 호비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조기 반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동두천 시민들의 입장이다.

동두천시 보산동 주한외국인관광특구상가연합회 김대열(53) 회장은 “미군 재배치가 시작되면서 보산동은 물론 동두천시 전체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며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동두천시민연대 강홍구 상임대표도 “동두천 미군기지가 조기에 반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군 기지 내에 심각한 환경 오염의 치유와 복원을 공여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며 허울뿐인 정부의 특별법을 지적했다.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서있는 동두천.

50년 넘게 기지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았던 동두천 주민들이 공여지 반환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같은 국민적 관심사에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을 동두천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하루종일 손님 10명도 못받고 파리만…
강력범죄에 발길 뚝 끊겨… 상인들 ‘울며 겨자먹기’식 영업


 

 

 

동두천시 보산동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 건너편에서 미군 전용 클럽을 운영하면서 주한외국인관광특구상가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대열(53·사진)씨. 김 회장은 어두컴컴한 클럽에 홀로 앉아 섹소폰을 불고 있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클럽을 운영해 왔지만 최근처럼 불황을 느낀 적이 없었던 김 회장은 불고 있던 섹소폰을 입에서 떼며 말문을 열었다.

“하루종일 보산동 일대를 다녀도 미군 10명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미군 공여지 문제와 잇따르는 각종 미군범죄로 미군들이 부대 밖을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두천은 최근 미군의 미용실 방화사건과 택시기사 폭행사건 등 잇따른 미군들의 강력 범죄로 초긴장 상태였다.

“미군 범죄가 발생하면 보산동 일대는 폭격을 맞은 듯 조용해지지. 미군 절반 이상이 철수한데다 강력 사건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전체 상가의 90%가 울며 겨자먹기로 영업을 하고 있어.”

보산동 일대에서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는 점포는 모두 250여곳. 한창 보산동이 번창할 때는 290여곳의 점포가 성황을 이뤘지만 40여곳이 폐업한 상태다.

나머지 점포들도 영업이 안되긴 마찬가지지만 ‘배운게 도둑질’인지라 미군을 상대로한 영업 외에는 해본 것이 없는 이곳 사람들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는 게 김 회장은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곳 사람들은 여기를 떠나려 해도 떠날 수가 없는 입장”이라며 “점포를 내놔도 거래가 없는데다 거래가 된다 하더라도 이곳의 점포세로는 동두천 시내 점포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산동 일대 부동산에는 수십개의 점포가 나와 있었지만 최근 6개월동안 거래는 한건도 없었다.

김 회장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동두천을 기지촌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며 “이곳의 실정을 잘 아는 시의원들 조차 이곳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군이 떠나면 이곳도 달라지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떠날 곳이 없어. 정부가 미군공여지에 대한 혜택만 줄 게 아니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살아갈 방법도 찾아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김 회장의 마지막 한마디가 스산한 보산동 길에 더욱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해방이후 역사 고스란히 간직

 

 

 

“동두천이 기지촌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지촌에 대한 의미가 미군이 주둔했던 곳에서 한반도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두천시민연대 강홍구(40·사진) 상임대표는 “기지촌은 미군 입장에서 보느냐 국민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며 “이제 동두천도 미군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대표는 “기지촌은 분단의 모습과 아픔이 집결된 곳”이라며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곳을 비하적으로만 표현하기 보다는 해방 이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이어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40% 이상이 미군 공여지이며 군사보호시설까지 합치면 ⅔이상의 면적에 개발이 제한돼 있다”며 “그만큼 동두천은 시민을 위하기 보다는 미군기지를 위해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에 대해서는 “미군 공여지를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공여를 받느냐가 문제”라며 “현재 미군기지 안에 있는 시설물을 철거하고 환경을 복원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빠지는등 이번 특별법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군기지와 연관된 산업이 침체되면서 동두천 경기도 침체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현재 동두천에 미군과 연관된 산업은 전체 20%도 되지 않는다”며 “한때 미군 관련 산업에 동두천을 지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여러 산업이 병행돼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기지촌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스스로 노력하는 것 밖에 없다”며 일본이 히로시마 원폭지역을 역사유적지로 개발한 것처럼 우리도 동두천을 분단의 현실이 그대로 안고 있는 문화자원으로 활용해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두천시민연대는 지난 1990년 창립한 동두천지역 진보성향 시민단체로 1992년 10월28일 가장 잔혹한 미군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비롯해 각종 미군범죄에 강력 대응했고 사회단체 최초로 미군공여지 문제를 제기, 지역의 미군공여지 일부를 반환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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