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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몸뻬를 우습게 여기지 말라

일제시대 전쟁수행 목적 총독부에 의해 일방적 강요
흉한 옷 아닌 ‘식민지배 역사 담긴 옷’ 의미 깨닫길

얼마 전에 딸아이가 몸뻬 바지를 사왔다. 요사이 몸뻬가 다시 유행인지 거리에는 다양한 무늬의 몸뻬를 팔고 있다. 문득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몸뻬 입은 여성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몸뻬가 별 디자인도 없고 펑퍼짐한 옷이어서 그럴 테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몸뻬는 그렇게 가볍게 조롱당할만한 옷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뻬는 우리나라 옷이 아니다. 원래 일본 동북부지방의 농촌에서 농사일을 할 때 입던 옷이다.

일본의 노동복인 몸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건 일제강점기 일본이 전쟁을 치르면서이다. 일본은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15년간 전쟁을 하면서 자국의 남성들에게는 양복 대신 ‘국민복’이라는 옷을 입게 하고, 여성들에게는 활동적인 전시복장을 고안하도록 하였다. 당시 일본에 서양의 옷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일본여성의 일반적인 복장은 전통적인 의복인 기모노였다. 정부보다 먼저 신문사나 잡지사가 현상모집을 개최하였고 가정학자 등 여성복 디자이너들이 단순하고 활동적인 여성복을 고안하여 내놓았지만, 전통적으로 입어온 몸뻬가 일본여성들의 전시복장으로 자연스럽게 확산,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시체제가 되자 남성들에게는 국민복을, 여성들에게는 몸뻬를 입도록 강요했다. 당시 총독부는 이미 전쟁을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전쟁수행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동원하고 규제하기 시작했다. 여성들도 동원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방공훈련과 농작업에 여성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서 보다 활동적인 복장으로서 몸뻬 착용을 강요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기능적인 복장을 고안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고 현상모집을 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다. 총독부에 의해 전통 일본 옷인 몸뻬가 일방적으로 우리나라 여성에게 강요된 것이다.

이와 같이 전시 여성복을 만든 것은 전쟁으로 후방의 여성도 공습에 대피한 방공훈련이나 소방훈련 등의 활동을 해야 하니 기능적인 복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실은 전쟁 수행을 위해 모든 물자의 사용을 규제하고 자유를 압박하며, 다양한 집단의 여성들을 통일된 복장으로 균질화하기 위해서였다.

몸뻬에 대한 우리나라 여성들의 반감은 매우 강했다. 원래 바지라면 한복 치마 속에 입는 속옷이라는 생각이 강하기도 했지만, 의복과 같이 오랜 관습에 의한 것,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문화가 강제로 통제되니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몸뻬를 입으라고 하여도 여성들이 잘 입지 않자 총독부는 ‘몸뻬필착운동’을 폈다. 몸뻬를 입지 않으면 관공서나 영화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전차도 탈 수 없게 했다. 또 몸뻬는 헌 옷을 이용하여 만들도록 규제하고, 고급감이나 새 옷감, 화려한 색깔로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관공서와 학교, 회사, 공장, 식당이나 상점의 여종업원도 반드시 몸뻬를 입도록 규정했다. 공공장소와 영화관, 식당 등의 출입문에는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의 출입을 금한다’는 게시문을 붙이도록 했다. 심지어 순사가 거리에서 여성들의 복장을 단속하고 처벌하기도 했다. 그러자 여성들은 단속에 대비하여 몸뻬를 싸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여성들의 몸뻬에 대한 저항은 심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후 65년이 지난 지금도 몸뻬는 우리나라 여성의 노동복으로 남아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사회의 혼란과 빈곤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던 여성들에게는 몸뻬가 편리한 노동복으로 남은 것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된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도 열리고 있고, 다른 어느 해보다 한일간의 화해와 상생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한일 간에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몸뻬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몸뻬는 그저 보기 흉한 옷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가 담긴 옷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안태윤 경가연 성평등, 고용연구부 연구위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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