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주의보로 인천 연안부두에 발이 묶여있던 연평도행 여객선이 결항 3일 만인 지난 4일 오전 9시30분 330석이 넘는 ‘코리아익스프레스’호는 승객을 가득 태우고 연평도를 향해 출발했다.
연평도로 향하는 ‘코리아익스프레스’호에 함께 탄 연평도 주민 김모(50·여)씨는 열흘만에 집을 살펴보러 다시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사방에서 불이 붙고, 대포소리가 나니 무서워서 도저히 섬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며 “다행히도 이웃 어르신이 꽃게잡이를 하고 있어 그 편에 연평도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배에는 지난 10월 18일 해병대에 입대해 연평부대로 부대배치를 받아 처음으로 연평도 땅을 밟게 되는 해병대 1천128기 신병 5명도 함께 타고 있었다.
수원시 금곡동에 부모님이 계시는 김광민 이병은 “훈련소에서 연평부대로의 부대 배치가 결정되자 마자 북한의 포격이 있었다”며 “두려움 보다는 해병대 선배들과 죄 없는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만행에 울분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코리아익스프레스’호가 연평도 당섬항에 무사히 접안하고 10여일만에 처음 보는 연평읍의 모습은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 민가와 상가들이 모여 있는 연평읍은 북한의 집중 포격으로 인해 거의 초토화된 상태였다. 주민들은 “다행히도 포격이 시작된 시간대가 주민들 대부분이 일 나가있을 시간이라 인명피해가 적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정창권 연평우체국장이 사는 서부리의 집 안방 천장으로 포탄이 뚫고 들어와 침대에 박히는 바람에 깔려있던 이불이 포탄에 녹아 들어가 붙어 있는 모습은 당시 주민들의 공포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더욱 놀랍게 한 것은 연평면 서부리와 중부리 일대에 민가 밀집지역에 떨어진 포탄에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만한 좌표가 정확히 써 있었다는 것이다. 정창권 우체국장의 집은 연평도 파출소 바로 옆에 있었다.
파출소와 약 20m떨어진 인천해양경찰서 연평파출소도 북의 표적이 됐다. 취재기자는 물론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연평도 북쪽에 있는 발전소 주변에는 정확히 맞은 포탄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무려 16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또 연평면사무소가 있는 연평면 연평읍에는 학교관사와 보건소, 해병 연평부대의 병기창이 불과 20m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천운이 따랐다.
연평성당 앞마당에 떨어진 포탄은 성당의 승합차를 박살냈고, 연평중·고등학교 뒷마당에도 떨어져 학생들이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밤이 되자, 연평도 일대는 적막감에 휩싸였다.
다음날인 5일에 주민거주시설 복구사업을 실시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안내방송을 듣고 하나, 둘 면사무소로 모여들었던 주민들은 주민거주시설 복구사업이 갑작스레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이날도 다행히 기상이 좋아 연평도로 향하는 배는 인천연안부두를 출발했고, 오후 1시가 넘어 당섬항에 도착한 ‘코리아익스프레스’호는 인천 찜질방에 나가있던 연평도 주민 50여명을 연평도에 내려놓고, 어제 섬에 들어와 집안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다시 찜질방으로 향하는 주민을 태워 떠났다.
이곳 연평도는 차츰 다시 살고자 하는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87명에 불과했던 원주민 인구가 이틀만에 130여 명으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