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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열전] 조용이 씨와이뮤텍 ㈜ 회장

자동차 변속기 기어 국내 최고로 인정받는 씨와이뮤텍 기술력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1세대. 포니신화 창조와 코란도 설계에 두각
조용이 회장 “심재덕 시장이 후원회장 요청… 화장실협회까지 맡으며 인연”

글 ㅣ 안병현 편집장 abh@kgnews.co.kr 사진 ㅣ 최우창 기자 smicer@kgnews.co.kr

 

 

조용이 씨와이뮤텍(주) 회장을 인터뷰 하기 위해 찾아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회사 정문에 들어서자 이곳이 기계부품 관련 제조회사라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매케한 기름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전 상식으로는 조 회장이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니 협회쪽으로 인터뷰 장소를 잡을 법도 하건만 왜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이 궁금증은 조 회장을 만나면서 해소 됐다. 이 회사는 조 회장이 젊은 시절부터 그의 청춘과 엔지니어 인생을 걸고 창업한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 회장은 필자가 명함을 건네자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캠카드 앱 즉, 명함 스캐너를 돌리며 능숙한 솜씨로 명함관리에 들어간다. 그사이 조 회장이 건넨 두겹짜리 명함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씨와이뮤텍(주) 회장, 경기경영자총협회 회장, 한중친선협회 경기지회 회장 직함이 나란히 적혀있다. 그리고 별개의 명함칸에는 세계화장실협회 회장 이라고 씌여 있었다. 단연코 씨와이뮤텍 직함이 가장 위에 올라와 있었고 공학박사 (아호 담우. 潭祐) 조용이(趙龍伊)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 회사 규모가 만만치 않은데 무엇을 생산하는 회사인가요.

“자동차 트랜스밋션 기어를 동기 기어라고 합니다. 자동차가 변속할 때 마다 적당한 회전수에 맞게 기어를 맞물리게 해주는 기어를 말하는데 업계에서는 고급기술에 해당합니다. 이 기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국GM과 세계GM, 포드사, 현대, 기아자동차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자동차 관련산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1970년 쯤일겁니다. 당시 이영석 과학기술부장관이 KIST를 설립하고 천병두 박사를 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천 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산학기술개발 프로젝트팀에 합류하라는 거에요. 저는 팀에서 특수금속 연구개발에 주력했습니다. 그후 산학기술개발 팀 연구실장까지 지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 씨와이 뮤텍을 창업한 것은 그 후가 되겠군요.

“녜 그렇습니다. 제가 국내 자동차 회사 여러곳을 다니며 참 일도 많이 했습니다. 제 일을 하고 싶어서 지난 85년 회사를 설립했는데 2004년 회사명칭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씨와이 뮤텍으로 변경하였고 지금은 아들 홍상(42)이 사장을 맡아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조 회장은 인터뷰 도중 공장 라인을 소개시켜 줬다. 30분이 넘게 그의 말은 쉼이 없었다. 모두 자신이 직접 설계해서 자동화를 실현 시켰다고 자랑한다. 그의 땀과 청춘이 느껴진다.

조 회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발달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1972년 현대자동차 설립당시 몸담았던 자동차 업계를 지금까지 떠나본 적이 없다. 조 회장은 1937년 생이니 우리나이로 75세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힘이 솟는다. 또 그의 손에서는 USB포트가 떠나지 않는다. 포토샵을 열어 사진을 자유자재로 어루 만지는 신세대 회장님이다.

씨와이뮤텍(주)은 모든 사원에게 만드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기업, 모든 사원이 파는 즐거움에 감사하는 기업, 모든 고객에게 사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기업을 모토로 세계 최고의 품질(THE WORLD BEST QUALITY)로 고객요구에 부응하여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를 실현해 가고 있다.

 

 

1985년 금성 Autonics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추구하며 미지의 가능성에 도전해 왔다. 그 결과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시작으로 자동차부품 생산, 계전분야, 그리고 PC 및 PLC의 Soft-Program 개발 등, 기술집약적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게 되었다. 공장자동화 분야에서는 선진국들의 설계기술과 대등한 위치에서 각종 자동기계 및 부수장치들을 설계, 제작하고 있으며, 특히 수동변속기용 동기 기어(일명 싱크로나이져링) 분야에서는 국내 최대규모와 최고의 기술을 인정받는 기술 집약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국내, 외 완성차 업체 및 변속기 시스템 업체의 우수 1차 협력사로서 한국, 인도, 중국의 현지공장에서 각기 최고의 제품을 적기에 양산 공급하고 있다.

씨와이뮤텍의 기업가 정신은 조 회장의 집념과 직결된다. 조 회장은 1961년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입학해 이듬해에 졸업했다. 그러던중 앞에서 언급했듯이 KIST 천병두 소장이 산학협동 공동개발 팀에 합류하라는 부탁을 받고 연구개발에 주력하던중 현대자동차와 인연을 맺는다.

71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설립되고 한해가 지나자 정주영 회장의 동생이며 우리나라 포니신화의 주역인 정세영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울산공장에 포니생산라인을 설립하는데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조 회장은 외국 유학계획을 취소하고 현대자동차 행을 결정한다. 조 회장은 73년부터 80년까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제조부장 및 플랜트 엔지니어링 총괄부장을 맡으며 현대자동차 포니신화의 일원이 됐다.

그러던중 틈을 내 부산 국립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대학원에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다. 때를 같이해 시발차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거화(구 신진자동차)로부터 제의가 들어와 전무이사 공장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가 1980년도. 조 회장이 근무하던 중 거화는 쌍용자동차로 흡수 되었고 불후의 명작 ‘코란도’가 이때 만들어졌다. 조 회장은 전무이사 공장장을 맡으면서 코란도 설계에서부터 생산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코란도 탄생의 1등공신인 셈이다. 부사장으로 승진되었지만 조 회장은 큰 뜻을 품고 회사를 그만 둔다.

그 후 조 회장은 그동안 다져진 자동차 업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지난 85년 씨와이 뮤텍의 전신인 금성 Autonics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주)창윤에 이어 지난 2004년 씨와이 뮤텍(주)(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338-1)으로 회사명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창업당시 조 회장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 부사장에서 창업과 동시에 그의 신세는 급전직하하는 신세를 겪었다. 처음 서울 문래동에서 공장을 시작하면서는 도로에서 기름 묻은 옷을 입고 기계를 만들면서 어렵게 일을 했다. 그때의 경험이 오늘의 씨와이뮤텍의 기반이 되었다고 조 회장은 말한다. 그의 노력에 힘입이 1987년 수원공장으로 이전해 왔고 싱크로나이저 링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공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그의 공장은 지금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본사를 비롯, 화성시에 씨와이오토텍과 인도에 씨와이뮤텍 인도공장을, 중국에 씨와이칭타오 파워트레인 등 국내 2곳, 해외 2곳의 공장을 운영하는 굴지의 자동차관련 부품회사로 성장했다. 화성시 봉담읍에 국내 최초로 국제규격의 카트빌 경기장을 갖춘 이도 바로 그다.

조 회장은 만능 스포츠 맨이다. 학창시절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가 지금까지도 40대를 방불케 한다. 대학시절에는 태권도 공인 3단의 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골프는 지금도 맞상대가 없을 정도다.

조용이 회장의 여러 사회활동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지난 2009년부터 맡고 있는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이다. 어떻게 이 단체를 책임지게 되었을가 궁금했다. 이 단체의 성격으로 보아 협회를 주도했던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17대 국회의원)과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 고 심재덕 시장을 알고 지낸것이 언제입니까.

“1993년 당시 윤세달 경기도지사와 함께 중국시찰을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심 시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각이 참 건전하고 또 저와 통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심 시장은 수원문화원장 자격으로 참가했습니다”

- 그게 전부인가요.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2004년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당시 심 시장은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불러요. 그래서 갔더니 다자고짜 후원회장을 맡아 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나는 수원사람도 아니고 자격이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나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후원회장은 조 회장이 적격’이라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맡게 되었어요”

- 그가 주도했던 세계화장실협회를 어떻게 맡게 되었나요.

“2009년 1월 돌아가시기 보름전 쯤 한번 보자고 그래서 해우재로 찾아 갔어요. 구삼렬 UN유네스코 대사 등 서너명을 거론하며 협회 회장을 맡아 줄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해 8월 제가 협회 회장으로 취임하고 그의 뜻을 어어가기로 했습니다”

- 협회 운영이 어렵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해 주는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곤혹스럽습니다. 외국 화장실 지어주기 사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실외 화장실에 태양열을 이용한 화장실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이익금으로 협회운영을 계획하고 있는데 뜻대로 잘안되고 있습니다”

- 사실 조 회장님도 화장실 문화와 관련해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한번은 딸 아이가 일본갔다 오면서 일본의 화장실 문화를 얘기하는거에요. 그래서 심 시장에게 화장실 문화를 일으켜 보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심 시장은 제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일본의 특색있는 화장실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사진을 많이 건넨적도 있습니다”

조 회장은 50대를 넘어선 93년 단국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구하고 노력하는 조 회장의 성격은 나이를 초월한다. 조 회장은 사진에 조예가 깊다. 대학에서 물질분석학을 공부할 시절 금속의 재질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사진이 취미 아닌 취미가 되었다. 사진기의 명가 라이카 시리즈와 니콘 카메라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찍은 3만장의 사진을 아이팟에 보관중이라며 자랑한다. 지금도 청춘으로 사는 70대 중반의 조 회장에게서 힘을 느낀다.

조용이 회장은

△경북 합천군 봉산면 출생

■ 학력 및 이력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물리학과, 대학원 졸업 △부산 국립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대학원 졸업 △프랑스 ESSES 대학 단기 경영학 과정 수료 △단국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KIST 천병두 박사 산학기술개발팀 연구실장 역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제조부장 및 플랜트 엔지니어링 총괄부장 역임 △주식회사 거화(구 신진자동차) 전무이사 공장장 및 부사장 역임 △코리아 스파이서 공업주식회사 기술담당 부사장 역임 △씨와이 뮤텍(주) 회장

■ 경력

△기술혁신회 회장 역임 △산업기술진흥협회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 역임 △수원상공회의소 부회장 역임 △경기경영자총협회 회장 △국제라이온스클럽 제354-C 지구. 안암라이온스클럽 회장 역임 △사단법인 한국공작기계학회 학회장 역임 △사단법인 세계화장실협회 회장

■ 수상

△제25회 과학의 날 대한민국 석탑산업훈장 수상(대통령) △기술혁신상 수상(중소기업청장) △기술혁신대상 수상(상공부장관) △대한기계학회 대한민국 기술상 수상(대한기계학회장) △안암라이온스 사자상 수상 △대한민국 동탑산업훈장 수상(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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