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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Life] 이병성 용인상공회의소 회장

용인을 유통업 특구지대로
덕성·남사단지에 아파트형 공장을

김량장동 구도심개발, 주상복합건물지어 경제 회생시켜야
삼성전자 수원공장부지 안내하자 이병철 회장 ‘감탄’

글ㅣ안병현 편집장 abh@kgnews.co.kr 사진ㅣ최영석 기자 choi718@kgnews.co.kr

 

 

1991년 6월 13일 용인시 상공인들의 염원이 이뤄지는 날이었다. 용인상공회의소가 수원상공회의소에서 분리돼 출범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드디어 4월 1일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597에서 꿈에도 그리던 회관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이병성 용인상의 회장(73)은 “지역 상공인들의 숙원인 상의 회관 준공으로 기업의 경영정보 및 신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며 “회원기업들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용인상의 출범 당시부터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 회장은 가슴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용인경제의 한줄기를 책임지고 있다는 무한열정이 읽혀진다. 이 회장은 고 이병희 국회의원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수원지역 경제계와 정치권을 두루 섭렵하며 질곡의 역사를 함께해 온 이 회장을 인터뷰 하기 위해 용인상공회의소를 찾았다.

- 20년만에 새 회관을 갖게 됐는데 감회가 새로우셨겠습니다.

“제가 20년전에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두가지 목표를 정했습니다. 한가지는 우리 기업인들의 요람인 회관을 갖자는 것이었고 또하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두가지 목표중에 한가지는 이룬셈입니다. 기업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기업환경 개선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 용인지역도 규제가 심해 기업활동에 어려움이 많을텐데요.

“용인지역은 자연보전권역에 해당돼 각종 행위제한으로 인해 기업들이 기업활동을 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용인상의는 전국상공회의소를 통해 지속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청와대, 중앙부처, 경기도 등에 해오고 있습니다”

- 성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건의를 통해 크고 작은 사안들이 해결되고는 있습니다만 완벽한 수준은 아닙니다. 당장 중소기업 상속세 완화가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높은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곳에 기업을 팔아 기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수년전 권오규 기획재정부장관을 초청해 창업주의 창업정신이 대대손손 이어지게 하고 기업전통을 이어가게 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상속세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해 어느정도 받아들여진 것은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적극적인 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장관을 지내고 계신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해 3월 용인에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영부실로 덕성산업단지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한 적이 있습니다. 또 각종 규제로 공장증설을 하지 못해 강원도 원주로 일부 공장라인을 옮겨야 하는 위기에 몰렸던 제일약품을 찾아가 실상을 말씀드렸더니 즉석에서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91년 초대 용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기 이전부터 기업을 일구고 있었다. 1973년 플라스틱 모형을 찍어내는 (주)세화를 수원에 설립한 것을 필두로 세화몰드텍(주), 세화정밀(주), 세화정밀(주), POSEDO(주), 세화파레텍(주), 세화폴리텍(주), 사하세화(주) 등 7개회사를 창업해 대표를 맡았다. 지금은 3개회사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용인상의 설립 당시 일화는

김 회장은 용인상의 설립당시 일화를 소개한다. 용인상의가 수원상의에서 떨어져 나와 지소형태에서 상의로 전환될 무렵인 지난 91년 당시 용인지역 국회의원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웅희 전 의원이 자신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지인을 용인상의 회장으로 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 의원이 회장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 인사는 3년간 회비를 납부한 실적이 없어 회원자격을 아예 갖추지 못한게 문제였다. 이같은 상황을 전하자 이 전 의원은 뜻을 거둬들였다. 이 회장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수행해 오고 있다.

설립당시 용인상의 관내에는 삼성반도체, 경방, 일양약품, 녹십자, 선경매그네틱 등 유수기업이 산재해 있었다. 기업활동이 그어느지역보다 왕성했다. 그러나 용인지역은 2천년대 들어서면서 노동력 부족현상과 기술력의 한계, 수도권밀집, 한강수계문제 등 어려움이 겹치면서 기업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용인지역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에 해당돼 각종 행위제한으로 인해 기업들이 각종규제에 시달려 왔다. 규제완화의 중요성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일약품에서 찾을 수 있다. 제일약품은 전체 3만평 부지에 1만여평이 공지로 남아있지만 수도권규제로 공장을 확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일약품측은 강원도 원주에 산업단지 5만평을 가계약 한 상태였다. 지역의 우수기업이 공장규제로 역회로 유출되는 역효과가 심각했다. 그래서 기존부지 활용과 용적률 완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외자유치가 성사되어도 공장을 지을 수가 없어 외국으로 이전해 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현행법이 기업활동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일찌감치 용인지역이 인력부족, 개발제한으로 야기될 수 있는 각종 문제점을 미리 보완하기 위해 용인지역의 새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래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5년전 당시 서정석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용인상의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산업단지를 만들어 새로운 세수를 확장해야 한다”고 다소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좀 강하게 어필하다보니 화근이 된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공무원에게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용인시청 국.과장들이 상의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장을 찾아가 “용인의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 뿐이다. 잘사는 용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제안한 것이니 받아들여 달라”고 말해 오해가 풀리기도 했다.

 

 

용인시 2003년 이후 지방세수입 감소 심화

2003년 지방세수입 1조돌파는 용인시가 전국 기초자치단체중에서 최초로 세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지방세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발언내용을 귀담아 들었어야 할 시청공무원들이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입증됨 셈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기업들이 떠나지 않고 기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 회장은 생각하고 있다. 용인은 현재 인구 90만 도시에서 오는 2020년 12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떠나지 않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이 회장은 규제완화를 위해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현재 용인은 제조업 유치가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이 회장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 용인시의 유통업 전성시대의 도래다. 신세계 죽전점이 전국2위의 매출고를 기록하고 있고 이밖에 용인에는 E마트가 7개 개설되어 있다. 앞으로 3개를 더 증설한다는 폭표다. 따라서 신성장동력으로 용인지역에 유통업 유치를 최대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인상의는 이를 관철시기 위해 제반여건을 조성해가고 있다.

덕성. 남사 산업단지 조성이 급하다. 이곳에 도시형 공장 즉, 아파트형태의 공장을 지어 소규모 제조업을 입주시켜 용인지역 노동력을 흡수해서 살기 좋은 용인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구도심에 불과한 김장량동 1만5천평 부지를 산업시설 유치를 전제조건으로 개발해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면 경쟁력 있는 구도심이 될것이라고 자부한다.

이 회장으로부터 용인경제의 해법에 대해 듣는 동안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수원에서 7선을 지낸 친형 고 이병희 전 국회의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전 의원은 1963년 38세에 수원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7선을 했다. 무임소장관을 지낸 바도 있다. 경기도청 수원이전, 삼성전자 수원유치를 가장 큰 업적으로 꼽고 있다. “수원에서는 이병희를 통하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의 권력은 막강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수원유치과정이 궁금했다.

한 때 수원지역 건달 수백명이 수원을 뜬적이 있었다. 이 전 의원의 육사동기인 8기생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미군부대 경비 입찰용역을 따내면서 70년대초반 수원지역에서 건장하고 혈기왕성한 젊은이 700여명이 차출돼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이 전 의원이 이렇다할 직업도 없이 배회하는 이들을 현장으로 밀어 부쳤다. 이 전 의원은 한창 잘나가던 6~10대 의원을 거치면서 수원사람 7천여명을 취업알선했고 주례 5천건을 섰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이 전 의원이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해 삼성전자 수원유치가 확정됐다. “제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일하고 있는데 하루는 형이(이전 의원) 부르더니 이병철 삼성회장이 삼성전자 공장을 수원에 지을려고 하는데 나에게 30~40만평쯤되는 땅을 알라봐달라고 했다며 같이 찾아보자고 하는거에요” 이 회장은 만사 제쳐두고 형인 이 전 의원과 함께 차를 타고 수원지역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형제는 지금의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가 들어서 있는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 일대를 삼성전자 적지로 찍었다.

당시 삼성측에서 전무가 내려와 땅 구입작업을 진행했다. 1967년 당시 평당 350원에 필요한 땅을 모두 구입했다. 그러나 문제가 터졌다. 이병철 회장이 직접 현지에 와서 보더니 땅이 고르지 못해 경지작업을 해야하는데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퇴짜를 놓았다. 그래서 형제는 또 다른 땅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지금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 들어서 있는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일대였다.

비교적 고른지형으로 넓은 평야형태로 이어져 있지만 이곳은 옥답이었던게 문제였다. 인근 원천저수지에서 직접 물을 공급받아 농사짓는 옥답이어서 안된다는 의견은 이 전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이 현장에 와서 보더니 좋다며 밀어붙이라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땅 구입작업에 착수했다. 평당 470원에 46만평을 구입했다. 그만큼 이병철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 경지작업을 어렵게 안해도 되고 경부고속도로가 인접해 있어 최고의 자리라는 것이 이병철 회장의 설명이었다. 그 후 삼성전자가 이곳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 인수

문제는 또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성균관대 부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삼성을 짓겠다며 땅을 사겠다고 해서 팔았는데 이무슨 날벼락이냐며 주민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삼성 임원과 주민들간에 폭격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그무렵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고 자연과학캠퍼스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주민반발은 무마가 됐다. 삼성부지로 구입한 땅의 절반은 성균관대학교로 개발하고 나머지 절반은 삼성이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서 오히려 돈더미에 올라 앉게 된 것이다.

그 후 이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오면서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11, 12대 국회는 발이 묶이게 된다. 96년도 15대 총선에 출마해 당당히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그 이듬해인 1997년 1월 13일 위암으로 세상을 뜬다.

이 회장의 회고다. “보궐선거가 시작되는데 JP가 불러서 대뜸 하는 말이 ‘자네가 나오게’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정치에 뜻이 없다고 잘라 말했어요” 이 회장이 보선출마를 고사하자 이 전의원의 처남인 민병현 변호사가 출마의사를 비췄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검진결과나 나오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화성지역에서 인재를 찾아보자고 해서 발견한 인물이 이태섭씨였다. 그는 당선돼 뺏지를 달았다.

이 회장은 형을 통해 정치인의 말로가 이건가 하는 생각에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형인 이 전의원이 세상을 뜨자 여기저기서 적게는 몇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차용증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는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정치에는 뜻이 없냐”고 묻자 이 회장은 “정치는 이판사판인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최고의 지도자 자질을 갖고 있으면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 지구당 당직자 50여명이 저를 추천했지만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경기도청 수원유치 비화도 소개했다. 이 전 의원이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시절을 거쳐 1963년 11월 26일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자 마자 머리를 깍고 국회의원 사직서를 챙겨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을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은 경기도청을 수원에 달라고 담판을 지은 것이다. 그날이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해체되는 날이었다. 밤 8시경 이주일 소장은 (최고회의 부의장) “경기도청 소재지는 수원으로 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해서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던 경기도청 청사는 국고 2억원에 도비 2천만원을 들여 지은 수원시 매산로3가 현 도청사 부지로 이전하게 된다.

홍기헌, 우봉제, 정규호씨가 ‘이병희 동상건립공동회장’을 맡아 3억원을 모금해 만석공원에 이 전의원 흉상을 건립했다. 이 회장이 이끌고 있는 백웅장학회는 11년째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작은 체구이지만 다부진 몸매의 백웅(白熊)이라는 별명은 형 이 전의원을 상징한다. 만석공원에 동상이 세워진 지난 2000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회장은 말한다. “형님은 정치에 기여한 공이 큽니다. 수원의 역사를 새로 쓴 사람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출신 CEO 모임인 ‘성균경영인 포럼’(회장 김윤식)은 최근 이 회장에게 ‘2011 자랑스러운 성균경영인’상을 건넸다. 이 회장은 내년 2월이면 제7대 회장 임기가 끝난다.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병성 회장은

△ 수원중·고 졸업 △ 성균관대학교 경제과.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AMP,DMP과정 수료 △ ㈜세화, 세화정밀, 세화몰드텍, POSEDO, 세화파레텍, 사하세화, 세화폴리텍 대표이사 사장. 회장 역임 △ 수원YMCA 재단이사장 역임 △ 한국컨테이너 파렛트 협회장 역임 △ 경기개발연구원 이사 △ 성균관대학교 ‘2011 자랑스러운 성균경영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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