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마루 지나 건넌방,
자다 깨도 달안개 이슥한 곳에서
나는 매일 밤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할머니 귀신이 자꾸 좇아와
뒷간도 못 가겠어
하면, 가만 아랫배를 쓸어주시던 할머니
뒷간엔 허깨비가 사능 겨
니가 올려다보면
고놈은 산만 해지고
내려다보면 고만
퇴끼 똥만 해지지
아래턱에 힘주고 뒷간에 걸터앉으면
누군가 속삭였습니다.
나는 사람이 더 무셔
보면, 아래에는 내 똥, 위에는 내 그림자
언제부턴가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이 보였습니다
- 이하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2012년/실천문학
어릴 적, 화장실에 관해 난무하던 온갖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귀신’으로 통칭되던 두려움의 대상들. 할머니는 배를 쓸어주며 타이른다. 뒷간에 허깨비가 산다고, 그 허깨비는 네가 생각하기에 따라 산만 해지기도 하고 토끼 똥만 해지기도 한다고. 그러나 허깨비는 뒷간이 아니라 내 속에 숨어 살았던 것. 어릴 적엔 보이지 않던 내 속의 허깨비들이 보이는 나이가 되면 ‘나는 내가 더 무셔’라고 혼자 중얼거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똥과 그림자 사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설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