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강력 성범죄자들이 이웃에 살고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이를 알지 못하고 사는 주민들이 불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조두순·박병화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과자들을 제외한 다수 위험군에 대한 정보가 쉽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미지의 지뢰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런 모순을 해소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무명이지만 위태로운 성범죄 전과자들이 주는 불안을 해소할 효과적 방안이 시급하다. 성범죄자 신상등록 사이트인 ‘성범죄자 알림e’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정보공개 성범죄자는 모두 699명이다. 전국 공개 성범죄자 2949명 중 23.7%를 차지한다. 도내 공개 성범죄자 중 상당수는 범행을 저질렀던 장소 인근을 포함해 해당 지자체에 살고 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과 ‘수원 발발이’ 박병화 등 언론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들은 24시간 철통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 성폭행범은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두순과 박병화와 비슷한 수준의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는 만큼 인근 거주자들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조두순의 자택 근처에는…
돌이켜 보니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4·19 혁명 56주년이 되던 2016년 4월 19일, 그 역사적인 날에 그야말로 역사적인 한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다. 초당(草堂) 신봉승(辛奉承) 선생. 83세의 일기였다. 선생은 ‘국민 사극 작가’로 불린 극작가요, 시·소설·평론·시나리오에 두루 걸쳐 130여 권의 저술을 남긴 광폭(廣幅)의 문인이었다. 그중에 많은 사람이 오래 기억하는 작품은 8년간 지속한 TV 드라마 '조선왕조 5백 년'이었다. 그 가운데는 세조 조의 한명회나 구한말 흥선 대원군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볼거리가 즐비했고 화제도 만발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성격이 확정된 역사에 대한 관점의 ‘반란’은 작위적인 의지만으로 가능할 리 없다. 오랜 사료의 검토와 연구, 그리고 역사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생은 이 곤고한 역사 학습의 과정을 초인적인 인내와 근면으로 넘겼다. 그는 언필칭 ‘재야의 역사학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이 국문으로 번역되기 전에 9년에 걸쳐 통독하고 그 500년 역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는 눈을 길렀다. 여러 곳의 말과 글에서 확인되는 선생의 문
원행을묘 백리길의 행차가 지나간 서울의 남북 간선도로는 숭례문-종각의 남대문로다. 그러면 이 도로의 너비는 얼마였을까? 궁금할 수 있다. 그래서 문헌 기록을 살펴보려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만드는 유적이 있다. 청계천 위의 광통교를 가보면 된다. 지금은 남대문로의 엄청난 교통량을 피해 서쪽으로 150m 정도 옮겨 놓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1410년 8월 8일, 큰비가 내려 청계천이 넘치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죽은 백성이 있었다. 이에 의정부가 임금에게 보고를 올렸다. "광통교(廣通橋)의 흙다리가 비만 오면 곧 무너지니, 청컨대 정릉(貞陵) 옛터의 돌로 돌다리를 만드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여기서 임금은 태종 이방원(1367~1422)이고, 정릉은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1356~1396)의 무덤이다.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일곱째 아들인 이방번(1381~1398)과 여덟째 아들인 이방석(1382~1398)을 낳았고, 태종의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1337~1391)가 조선의 개국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조선의 1대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정도전 등과 힘을 합해 자신의 둘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반전(反轉, Turning Over)이 돋보이는 영화를 검색해 보면 어김없이 선두를 점하는 작품으로 1996년 제작된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라는 영화가 있다.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이 연출하고 에드워드 노튼(Edward Harrison Norton)과 리처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주연한 미국영화다. 스릴러 영화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법정 영화(courtroom drama)에 가깝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 주교가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현장에서 잡힌 소년 애런은 순박해 보이는 인물로, 변호사 마틴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 사건을 맡는다. 그러나 검찰은 애런이 주교에게서 성적인 학대를 받은 증거를 찾아내고, 애린의 범죄를 확신한다. 재판 과정에서 애런은 극심한 불안증으로 다중 인격자의 모습을 보인다. 법정에서 애런은 무의식에 지배되는 광기로 무언가를 떠들어댄다. 이 과정에서 범인은 애런이 아니고, ‘로이’라는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정은 혼란에 빠지고, 마틴은 애런이 심신상실 상태임을 호소하여 무죄를 받게 한다. 다음 날 마틴은 애런이 무심코 흘린 말에서 그가 건강한 정상인이었음을 눈치챈다. 마틴이 다그
이른바 ‘소버린 AI’의 시대다. 인공지능이 경제·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간주되면서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 인프라, 모델 개발, 인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대규모 GPU 확보, 한국형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위한 5개 컨소시엄 선정 및 지원,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 등 다양한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세계시장의 확장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전통적 의미의 주권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데이터는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았고, 글로벌 플랫폼은 영토를 초월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클라우드, 통신망, 플랫폼 등의 서비스가 외국 기업에 의해 제공될 경우, 국가 주권은 제한된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로 텔레그램을 수사하는 데 한국 정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허비했는지를 떠올려보라. 반면 자국 기업이 핵심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주권적 영향력은 커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기업을 통해 백신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전 세계 국가들은 디지털 기술 전반에 대한 통제력, 즉 디지털 주권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기술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인프라 운영, 서비스 개발, 인
지난 13일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소재 제일시장에서 67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시장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0대와 70대 여성 2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사고 트럭 내 페달과 브레이크를 촬영하는 ‘페달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영상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에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도 70대 여성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행인을 치었다. 고령자 운전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 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 7월 1일 시청역 참사 이후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69세 남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역주행을 하다가 인도와 횡단보도로 돌진했다. 9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참사였다. 운전자는 자동차의 문제로 인한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조사 결과는 ‘운전자 과실’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0대 운전자가 골목길로 돌진해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올해 5월 서울 강동구 길동 복조리시장에서도 60대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
냉혹한 국제 현실과 과제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여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며,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등 G7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같은 인구 대국까지 국제 질서 재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게 이는 동시에 중대한 기회이자 위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으로 재출발한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민주화·정보화·세계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하며 ‘한강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09년에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OECD DAC 가입)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2021년에는 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K-음악·영화·드라마·음식·미용·IT·한국어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15세기 세종, 18세기 영조·정조 시대 이후 최대의 문예부흥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정세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자국 우선주의의 확대로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이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가 강력한 국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도,…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