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렇게 오셨습니다
화살촉에 묻은 독약처럼
내 가슴에 박히셨습니다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들어
서서히 서서히 나의 힘을 빼놓으시고
눈을 가물거리게 하시고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나의 죽음까지도 다 가지셨습니다
- 박상천 시집 ‘말 없이 보낸 겨울 하루’
/ 1988년 / 둥지
누구든 젊어 한 때 독약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것이 이념이었건 사랑이었건 노래였건 간에 일상적인 삶에 치명타를 입혔다면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독약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독 묻은 화살에 젊은 심장을 찔려 피 흘리던 순정을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과거형으로 분류해 청춘의 무모한 열정이었노라 말하는 사람 또한 있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그 대상(詩가 아니었을까?)에게 죽음까지도 다 가지셨다 했으니 그는 아주 소생 불가능한 독약을 마셨고 여전히 그 고통은 진행형일 것이다. 시인이여 부디 회복되지 말아라. 독약에 중독돼 서서히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때까지… 드디어 빛나는 문장 한 줄 초여름 녹음 속을 가르는 순백의 나비처럼! /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