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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三月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中心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

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

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 방.

나 오늘 들꽃 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

-박완호 시집 ‘아내의 문신’ / 2008년 /문학의 전당


 





 

우리도 언젠가 여인숙이나 여관에 들른 적이 있다. 숙박계에 이름을 적어 넣고 밤새 창밖에 내리는 눈의 고요를 자장가 삼아 포근한 잠 속으로 찾아들던 아니면 연탄가스 냄새 떠도는 방에서 일박의 밤을 보내며 길고 긴 편지를 쓰던 그런 시절, 하여튼 들꽃 여관은 상징의 여관이자 추억의 모처다. 들러서 첫사랑을 확인하기고 하고 자기의 첫사랑을 바치기도 하던 추억의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는 각별한 곳이다. 그곳에서 한 사랑의 전생을 만날 수 있고 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한다. 하나 그 여관은 깨달음의 장소이자 은둔의 장소이기도 하다. 모든 게 무화되는 그런 장소이다. 우리도 우리가 언젠가 들렀다가 떠나온 들꽃 여관으로 다시 찾아가 가식의 옷을 훌훌 벗어보자. 하루 쯤 만이라도 순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자. 아직 들꽃 여관의 간판은 내리지 않고 그대로 있을 테니 가자, 우리도 들꽃 여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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