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온 내 허물을 자정 넘어 벗는다
무량히 쌓이는 비늘 그 하루가 곤하다
빗금으로 솔질하며 지난 흔적지우다가
토사가 씻겨 내리는 어느 계곡 물소리
구두를 닦는 아침에 환청으로 듣는다
무수한 발걸음이 역사가 되기 위해
오로지 그 무게를 지탱해 준 검은 구두
한 줄기 햇빛을 받는 행사장이 더 환하다
- 김삼환시인 , 계간 ‘시와 문화’ / 2012년 / 여름호
“토사가 씻겨 내리는 어느 계곡 물소리”에 구두를 내어놓는다면 곤한 어제가, 때로는 모르는 척 타협했던 순간들이 말끔하게 흘러갈까? 갑자기 구두를 닦는 손이 제의(祭儀)처럼 느껴진다. 어제의 시간에서 내일의 시간으로 건너가는 세례의식 같은 것? 구두만큼 제 주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옷은 세탁을 해서 일그러진 모양을 다시 잡아줄 수도 있고 리폼을 통해 거듭날 수도 있지만 구두는 그럴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주인의 발을 그대로 현상해 낼 뿐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구두는 그야말로 한 개인 역사의 상징물이다. 얼마나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놓는 시간의 산물이다. 새 구두를 원하면서도 현관에 서면 늘 신던 구두한테로 발길이 향한다. 고집 센 발, 고집 센 기억으로 오늘도 편식 중이다. /박홍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