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빗소리에 놀라
창문 밖 거리를 본다
기다림의 얼굴로
가로등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담벼락의 괴발개발 낙서들,
모집 날짜를 넘긴 구인 광고들
사립 밑의 쭈구려 앉은
쓰레기 봉지와 함께 울고 있다
가래침을 쓸며
허튼 발자국을 지우며
빗물은 비탈길을 터벅터벅 걸어오고
담 밖의 세상 그리운
덩굴 하나 삐죽 고개를 내미는데
세상은 무덤처럼 고요하다
이 한밤 사람 아닌 것들 저리 살아
온밤을 분주하구나
-이재무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않고’ / 문학과 지성
빗물이 휩쓸고 가는 흔적들 속엔 많은 것들이 있다. 분주한 일상의 사연들, 구인 광고들은 많은데 구직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삶의 아이러니. 한 때 누군가의 군것질거리이거나 일용한 양식이 담겼을 "봉지"들이 함부로 버려지는 풍경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사연들이 쓸려가고 쓸려오고 쓸려 다니는 비오는 날. 기왕에 내리는 비라면 가뭄 끝에 오는 단비였음 좋겠다.
/시인 권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