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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성향숙 시인"늙은 여인의 저녁밥"

형광등 아래 저녁밥을 먹는 여인,

헐렁한 내장으로 차곡차곡 밥을 밀어넣는다

밥상 너머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본다

가끔 중얼거리는 말들이

밥 때문에 다시 가슴으로 들어가버린다

여지껏 한 끼도 거른 적이 없는 그녀,

눈빛을 모아 방안을 휘둘러본다

구식 가구의 비틀린 서랍들이 닫히지 않는

내용물을 삐죽삐죽 내밀고 있다

바로잡기엔 너무 낡아버린 저 커다란 무게,

저녁밥은 끊임없이

항문까지 이어진 내장을 통과하고 있다

아까부터 깜박이던 형광등이

완전히 빛을 감추고 숨는다

그녀는 간장 항아리의 내용물처럼 출렁거린다

밥상 위의 검은 것들이 내장을 향해 들어간다

텅 빈 저녁이 빈 그릇처럼 달그락거린다

- 배용제 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민음사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많은 웃음 많은 갈등 울고 웃던 가족들은 모두 제 생활로 바쁘고 그 많던 친구들 다 어디로 갔나? 여인은 세월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점점 고독 속으로 빠져든다. 전화기마저 먹통이 된지 오래고 말할 상대가 없어 방안의 비틀린 가구와 이야기 나누거나 유령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죽을 만큼 외로워서 삶이 서럽다. 고독하다고 느낄 땐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죽음에 다가간다는 느낌이어서 더 두렵다. 그래서 먹는다. 헐거워진 내장으로 ‘검은 것들’ 우겨 넣음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늙은 여인의 저녁은 텅 비었다. /성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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