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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이진희 시인"푸른 감"

담벼락 위로

푸른 감들이 매달려 있다



골목은 비틀려 있다

비틀린 골목에서는 판단과 /

구분을 잘해야 한다

한곳만 보며 가면

나오는 길이 지워진다



감들은 한곳만 보면 익는다

떫을 만큼 떫은 후에

붉게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다



감들이 매달려 있다

골목을 지우며 당도한

곧은 햇빛이

푸른 감을 감싸 안는다

판단도 구분도 안 하고

꼭 감싸 안는다

- 박시하 시집 ‘눈사람의 사회’ / 2012년/문예중앙

 

 

 

판단과 구분을 잘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마당과 옥상이 반듯한 자신의 집까지는 간신히 도착할지 모르지만 친구에게 가는 길은 못 찾을 겁니다. 친구와 우정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푸른 감을 볼까요. 몸통에서 꼭지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파란, 생겨난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치욕에 가까운 떫음을 견디는, 그래야만 탐스러운 붉음을 획득하는, 그러기 전에는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올 길 없는 열매. 햇빛은 그런 열매를 판단도 구분도 안 하고 꼭 감싸 안습니다. 우리들, 비틀린 골목처럼 불안한 판단과 구분을 되풀이 하고 있지만, 그래서 잘 판단하고 잘 구분해야 하지만, 골목을 지우고 당도한 곧은 햇빛은 푸른 감이 곱게 익어가게 할 힘을 더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판단과 구분을 훌쩍 뛰어넘은 참 따뜻한 포옹입니다.

/이진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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