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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가을 햇볕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오래 흘러온 강물을 깊게 만들다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여고 2학년 저 종종걸음 치는 발걸음을

붉게 만들다, 불그스레 달아오른 얼굴은

생살 같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다

그리하여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멀어지려 해도 멀어질 수 없는 우리들의 손을 붙잡게 하고

끝내 사랑한다 한마디로

옹송그린 세월의 어느 밑바닥을 걷게 하다.

 

 

 

봄날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가을이다. 봄, 그리고 여름 동안 당신은 가슴 뛰는 삶을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생성에서 소멸로 향해 가는 가을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산은 겨울을 나기 위해 머금었던 물을 모두 내보낸다. 이는 자연의 섭리다. 흘러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더라도 강물은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이 되면 특유의 우울증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랑이 막 싹트는 여고 2학년의 가슴은 가을이 되었건만 봄날 꽃잎처럼 여전이 붉기만 하다. 저물녘 가을날에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해는 지고 목덜미가 선선해지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여고생의 사랑이 식지 않길 기대해 보리라. 고운기 시인의 시 속 여고생들처럼, 모든 생명의 씨앗을 여물게 하는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 아래서 소멸 대신 생성을 꿈꿔 보자./박병두 시인

- 시집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2008년/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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