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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이정주"홍등"

이삿짐을 싣고 트럭이 지나간다. 점보는 집이 지나간다.

얼굴 찢긴 후보들이 지나간다. 허벅지를 드러내고 화투 치는

여자들이 지나간다. 붉은 등 아래 담배를 물고 서 있는 여자도

지나간다. 붉은 등이 그립던 날들과 엥겔스가 옳다고 생각한

날들이 지나간다. 보리밥집과 나무문 만드는 집이 지나간다.

이윽고, 지나간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 나무문 만드는 집 나무

문이 닫힌다. 보리밥은 식어 있다. 길가에 나와 있던 여자가

없어졌다. 붉은 얼굴의 여자들을 누이라고 생각하던 날들이

돌아온다. 외등이 꺼지고 점포 안이 붉다. 술상을 보는 여자

들 뒤로 숨는 엥겔스가 보인다. 나는 빈자리에 차를 집어넣는다.

붉은 얼굴로 졸고 있는 푸줏간 여자가 보인다.

- 시인축구단 글발 공동시집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에서 발췌


 

 

 

 

홍등이 있는 곳은 그리운 곳이다. 삶의 풍경이 무삭제 완역판으로 펼쳐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야생화를 만나고도 싶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도 싶다. 영혼의 동정을 버리고도 싶다. 홍등 아래는 삶의 진솔함이 펼쳐지는 곳이고 때로는 사회가 블루칼라가 금기시 하고 피하려던 몽환의 지대이다. 엥겔스처럼 부르주아와 투쟁을 위해 홍동 아래서 결의하는 자들이 있을 것 같은 곳에서 시인의 의식은 더듬이 잘린 것처럼 맴돈다. 지나간 것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고, 시인이 그 홍동의 추억 아래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외등이 꺼져버린 곳에서 술집에는 홍등이 켜져 있다. 푸줏간에도 홍등이 켜져 있다. 홍등은 마지막 삶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품고 밤을 건너가고 있다. 붉다는 것이 때로는 혐오감을 일으키나 분명한 것의 피의 색깔이므로 생명의 색깔인 것이다. 홍등도 끝없이 켜져야 할 생명의 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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