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속력을 내면서
무게의 심지를 박는다, 덜컹덜컹
스테이플러가 가라앉았다 떠오른다
입 벌린 어둠 속,
구부러진 철침마냥 팔짱을 낀 승객들
저마다 까칠한 영혼의 뒷면이다
한 생이 그냥 스쳐가고
기약 없이 또 한 생이 넘겨지고
아득한 여백의 차창에
몇 겹씩 겹쳐지는 전생의 얼굴들
철컥거리는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촘촘한 침목을 박으며
레일이 뻗어나간다
달리는 기차를 보면서 스테이플러를 상상하다니 아니 책상 위 스테이플러를 보면서 기차를 상상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낯설고 이질적인 만남이 재밌다. 기차는 소리로 먼저 온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비가 내리는 날은 좀 더 먼 곳까지 기적소리가 들릴 것 같다. <기차>라는 단어 속에는 이상하게 그리움이 묻어 있다. 한없이 펼쳐지는 풍경이 떠오르고 긴 침묵이 떠오른다. 덜컹 덜컹 제 무게를 끌고 달리는 기차는 정말이지 한 생과 무척 닮아있다. 시인의 말처럼 철컥거리는 기차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게가 있어 달리는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철걱거리며, 제 무게로 촘촘한 침목을 박으며 달릴 것이다! /박홍점시인
- 시집 『리트머스』 /2006년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