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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황종권"부엌은 힘이 세고"

부엌은 힘이 세고                                       /황종권

부엌에서 부엌을 꺼내니까 부엌이 깨지고,

엄만 깨진 부엌들을 줍고, 줍다가 손가락이 깨지고,

깨진 손가락은 피가 나지 않고, 퉁퉁 붓기만 하고,

퉁퉁 부은 손가락 사이로 기름 묻은 심장이 걸어 나오고,

심장이 마르기도 전에 나는 또 냄비를 태워 먹고,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는 또 밥상을 들고 오고,

들고 오는 모습은 가슴에 잔뜩 힘을 준 보디빌더 같고

나는 목소리를 반납하고 사람이고 싶었던 여자를 떠올리고,

또 술 처먹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물거품 물거품이 되고,

엄만 아직도 건널 수 없는 수심을 몸으로만 건너려고 하고,

나는 해장국 끓이는 엄마의 굽은 등을 둘둘 말아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면서 그릇들이 죽었으면 좋겠고,

그릇들은 여전히 단단하고, 오래 물에 씻겨 차라리 구릿빛이고

부엌에서 부엌 부엌에서 부엌.

나는 부엌을 헤아리다 헛배 부른 달이었다가,

젖 냄새 나는 구름이었다가, 다시 물거품 물거품이 되고, 배는 늘 고프고,

밤하늘 빛나는 근육들은 일제히 이 빠진 칼들을 쏟아내고,

물거품 물거품은 터지고, 퉁퉁 부은 식기들은 언제나 죽지 않고,

또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부엌은 한 상 차려져 있고

-글발 공동시집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에서-

 

황종권은 우리 글발 축구단에서 가장 어리나 가장 촉망 받는 가능성을 가진 시인이다. 이 시는 부엌의 권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국 벗어날 수 없는 부엌이지만 부엌이 차려준 밥으로 밥 힘으로 우리는 세상으로 나간다. 그러므로 엄연히 따지면 부엌은 또다시 우리가 태어나는 현실의 자궁이다. 모든 세상의 이야기 거리가 몰려들고 세상을 향한 모든 생각이 모락모락 밥에 피어나는 김처럼 피어난다. 삶의 희로애락이 부엌에서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하고 소극장의 따뜻한 단막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부엌에서 쌀 씻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또 설거지 하며 달가닥거리는 설거지 소리도 난다. 내내 그리운 그 부엌에서는, 그리고 부엌을 나설 때는 어느새 건장한 어깨의 사내가 되어 있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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