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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國                                                                                                  /박정석

요소비료 같은 싸락눈 내리고 다랑이 마을이 바빠졌다

하늘 방석인 저수지 위 얼음 썰매 작파하고

나는, 비료 포대 깔고 동산에 올라 눈썰매 탔다

저 눈 녹을 때 세상의 비탈 보이고 키는 크는 거고

봄눈 틔어 오르는 새벽, 물방울 졸졸 미끄럼 탈 것이다

삼일간의 고립, 휴교령은 황급히 날아왔지만 마을은

농한기처럼 느긋한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붉은 화투장 만치 아름다운 꽃, 엄동설원에 있겠는가

밤을 새워 꽃을 파는 골이 깊은 청년을

싸락싸락 북 주듯 다독여주는 눈발의 걸음 사이

바쁜 밑줄 긋느라 대나무 빗자루가 짧아졌다

터널 같은 굴뚝 빠져나와 하늘로 불려가는

연기의 동선은 길었다

사람들은 작아진 키로, 밤이 긴 마을로만 맴돌고

깨어나면 모두 눈의 나라였다 가끔씩

다 닳은 포대 걸친 영혼이 北國 하늘에 걸리기도 했다

- 서정시학(2006) 겨울호 중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엔 묵을 파는 화툿방이 있었다. 길이 넘게 눈이 쌓이면 마을 남자들은 밤새워 묵 내기 화투를 쳤다. 삼팔 광땡이나 비 조리, 청단, 홍단 같은 화투패의 이름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낮에는 동네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키가 작아 꼬마 이 서방이라 불리는 종국아버지를 시켜 돼지를 잡았다. 눈 위에 붉게 피가 번지고 시커먼 가마솥에선 순댓국이 끓었다. 사내애들은 손전등을 들고 웅성거리며 지붕 추녀에 손을 넣어 잠든 참새를 꺼내 구워먹고 시커먼 입술로 휘파람들을 불어댔고 여자애들은 웃자라 소매가 짧아진 스웨터를 잡아당겨 시린 팔목을 감싸며 발이 푹푹 빠지는 설국을 온 몸이 떨려오는 추위에도 자꾸만 뭔가 아쉬워 딱딱딱 이를 부딪치며 돌아다녔다. /최기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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