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을 둘러싼 극한 대치로 노사 양측에 큰 상처를 남긴 ‘쌍용자동차 사태’는 2009년 4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중국의 상하이자동차로 매각된 뒤 경영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안이 발표되면서 노조의 77일간 공장점거 파업, 사측의 직장폐쇄, 협상 결렬, 경찰 개입으로 이어진 쌍용차 사태는 2009년 8월6일 노사간 극적타결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2천646명 가운데 1천904명 희망퇴직, 159명 정리해고, 83명은 영업직으로 전직 또는 분사하는 아픔을 겪었고 ‘불법’ 점거파업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아 회사를 떠났다.
■ 구조조정으로 촉발된 쌍용차 사태= 노사 갈등은 2009년 4월8일 회사측이 전체 인력의 37%인 2천646명에 대한 인력감축안을 담은 ‘경영정상화 방안’을 노조에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는 5월21일 총파업을 선언, 다음날부터 평택공장내 본관과 도장공장 등을 차례로 점거하며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사측도 열흘 뒤인 31일 ‘직장폐쇄’의 강수를 두며 극한 대치로 치달았다.
■ 부상자 속출 등 갈등 심화= 파산을 우려한 ‘비해고’ 직원들이 공장에 진입하면서 노조와 충돌, 2009년 6월26∼27일 이틀간 양측에서 100여명이 부상했다. 7월20일에는 경찰이 공장 안으로 진입하고 직원들도 출근을 강행하면서 노조와 충돌, 노사 양측에서 100여명이 다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이 8월4~5일 노조가 점거중인 도장2공장을 제외한 모든 시설물을 장악한 1·2차 진압작전 중 노사 양측과 경찰에서 1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제 총포류까지 만들어 사용하는 등 노조의 투쟁이 갈수록 폭력 양상을 띠면서 쌍용차 사태 이후 7월29일까지 노조원 3명이 구속되고 노조 집행부 28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등 갈등이 깊어졌다.
쌍용차 사태는 점거파업 76일만에 ‘평화적 타결’로 마무리됐지만 결국 양측에 상처만 남겼다. 공장 점거 파업으로 차량 1만4천여대를 생산하지 못해 3천여억원의 생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됐고, 2009년 이후 현재까지 해고노동자나 가족 등 모두 2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숨졌다.
■ 기업회생절차 종료 및 합의 타결= 쌍용차는 2009년 9월 회생계획안을 제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회생계획안이 강제 인가됐다.
매각공고를 거쳐 2010년 11월 마힌드라 그룹과 회사 인수와 관련한 본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2월 3년 만에 국내 신차인 코란도C를 출시해 재도약에 나섰다.
해마다 경영 개선을 이뤄내면서 2011년 3월 법원의 결정에 따라 기업회생절차가 종료된 뒤 지난해 9월 말부터 노조와 무급휴직자 복직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는 동시에 생활고를 겪는 무급휴직자도 지원하는 등 타결의 실마리를 찾아왔다.
다만, 복직 대상에 희망퇴직자 1천904명과 정리해고자 159명은 제외돼 노사 양측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 철탑농성자 “국정조사 회피용 꼼수”= 쌍용차 평택공장 앞 철탑에서 고공 농성 중인 문기주 금속노조 쌍용차 정비지회장은 쌍용차 노사 간 무급휴직자 복직합의 타결 소식에 대해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 결정은 국정조사를 피하려는 꼼수”라며 고공농성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문 지회장 등 3명은 지난해 11월20일부터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 52일째 농성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