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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고름한복 김기재·손희경 부부

 

자주색 고름은 처녀가 입는 옷에는 달지 않는다. 평생의 배필을 만나 혼례를 치룰 때에야 비로소 저고리에 자주색 고름을 달 수 있다.

자주고름은 일편단심의 상징으로 평생 한 사람을 바라보는 삶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고집스럽고 별나 보이는 남편 김기재(62) 씨와 미소가 인상적인 그의 부인 손희경(55) 씨는 한복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행복을 꾸려가고 있다. 수원 영통에 위치한 한복집, ‘자주고름한복’을 찾았다.

▲한복을 향한 끊임없는 연구, 김기재 씨

현재 한복을 직접 디자인해 제작하고 있는 그의 본업은 한복 원단 도매업이다. 1980년대 초, 원단을 염색해 도매하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샘플 한복을 제작하게 된다.

그는 “원단 도매를 하면 샘플 한복을 만들게 된다. 바느질을 했을 때 얼마나 견고한지, 드라이크리닝을 한 후에 원단이 변형되거나 색이 변질되지 않는지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원단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리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직접 한복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심은 그의 유별난 성격이 바탕이 됐다. 한번 손을 댄 것은 끝을 봐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타협을 모른다.

그는 이런 성격을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한다. 할아버지 김동일 씨는 목공예가로 주로 상여를 만들었다.

그는 할아버지에 대해 “항상 나무를 깎던 모습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솜씨 좋기로 소문이 났던 할아버지에게는 종종 혼수로 쓸 장롱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한명도 부탁한 장롱을 찾아가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상여에만 몰두한 그의 할아버지는 재료 선별에서 부터 장식까지 전 과정을 본인이 직접 해야만 상여 하나를 내놨기 때문이다. 해서 장롱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인연 탓인지 한복 제작을 시작한 그는 한복에만 몰두하면서 자연스레 천연 염색과 바느질 등 한복과 관련한 모든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하우가 쌓이면서 그는 서울에 직접 한복집을 차린다.

그리고 그의 아내 손희경 씨에게 매장은 맡긴다. 한복을 만드는데에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노력한 결과로 지난 2011년에는 옻을 입힌 원단을 만들기도 했다. 옻은 방수기능으로 원단을 습기에서 보호할 뿐 아니라 강한 빛에 의해 색이 변하는 것을 막는데도 효과적이다.

옻염색 원단으로 만든 한복은 2011년 제15회 한복의 날에 출품됐으며, 한동안 국회의사당에 전시됐다. 지난 11월에는 직접 제작한 한복으로 ‘2013년 세계의상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현재 ㈔한복단체총연합회 옻염색연구회에서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온라인에서 ‘비단박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회원들과 옻염색에 대한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최고의 제자, 손희경 씨

남편이 한복집을 차리면서 매장에서 한복 소매를 담당하게 된 손희경 씨는 김기재 씨의 ‘최고의 제자’이자 ‘가장 말 안 듣는 제자’다.

손희경 씨는 30여년간 한복을 연구해 온 남편과 살면서 자연스레 한복에 정통하게 됐다. 염색에서 디자인, 제작까지 일일이 자신의 손을 거쳐야 만족을 하는 남편의 작업 과정을 어깨너머로 본 것 만도 30년이고, 남편이 매장일을 부탁하며 직접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이 20년이 됐다. 때문에 남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최고의 제자’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런 남편을 대신해 한복의 트렌드를 연구하고 손님과의 소통으로 남편이 손님에 맞춘 한복을 제작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남편과 종종 갈등을 빚기도 한다. 때문에 ‘가장 말 안 듣는 제자’로 불리기도 한다.

“한복에도 트랜드가 있고 손님의 취향도 고려해야 비로소 입는 사람에 맞는 한복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오래 일하다 보니 들어오는 손님 피부톤과 체형을 보면 대략적인 색상과 디자인할 때 주의해야 할 포인트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남편의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원단 염색과 한복 디자인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 물론 한복 제작은 스승인 남편이 한 수 위지만, 바느질 만큼은 아내 손희경 씨가 한 수 위의 솜씨를 가졌다. 그가 바느질 연습 삼아 만든 한복 미니어쳐는 매장 한편을 장식하고 있다.

남편의 유연함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한복에 대한 고집스러움은 남편을 닮아 있다. 서울의 매장을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 수원으로 내려온 것만 해도 그렇다.

부부는 2004년 경 서울에 있던 매장 문을 닫고 수원으로 내려왔다. 일부 극성스런 웨딩플래너들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웨딩플래너들이 찾아와 손님을 보내 주겠으니 수수료를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그런데 요구하는 수수료를 제하면 손님 손에 들어가는 한복을 손님이 낸 가격에 맞출 수 없었다. 손님에게 제 값의 한복을 주지 못 할 바엔 차라리 한복을 팔지 않겠다는 생각에 결국 매장을 정리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자주고름한복

서울의 가게를 정리하고 온전히 수원으로 내려온 부부는 비록 작은 매장이지만 “지금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음에 드는 한복을 만들고 또 제 값하는 한복을 만들 수 있어서다.

수원 영통에 위치한 자주고름한복은 아담한 규모의 매장이다. 매장 안은 천연염색된 색색의 원단들로 가득하다.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매장 앞을 지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꾸준히 손님이 찾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입소문과 만족한 고객들이 단골이 돼 준 덕분이다.

부부는 “한번 찾은 분들은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단골의 소개를 받고 찾는 사람도 있어 근근히 운영은 되고 있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부부는 오늘날 한복이 특별한 날에 한번 입고 마는 옷이 돼 가는 것은 못 내 아쉽다. 또 한복이 개량한복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되면서 한복 고유의 맛을 잃어가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김기재 씨는 “개량한복이라는 것을 보면 한복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것이 많다. 대중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한복이 본래의 모습과 멋을 잃는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세태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부부의 작은 바람은 그간 쌓아온 한복에 대한 노하우가 자녀들에게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슬하에 2남 2녀를 둔 부부는 특히 큰 딸 김희정(28) 씨가 손 씨의 바느질 솜씨를 닮아 기대가 컸다. 그런 딸이 지금은 평생의 배필을 만나 자주고름을 매고 곁을 떠났다.

“그래도 부모 마음을 헤아려 돌아와 줄지도 모를 일”이라며 부부는 “그때까지 지금처럼 꾸준히 한복을 만들면서 손님들이 고운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글ㅣ박국원 기자 pkw09@kgnews.co.kr

사진ㅣ노경신 부장 mono3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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