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가금류 이동제한 해제됐지만 재입식 난항
“몸은 고됐지만 양계장을 가득 메우던 때가 그립네요. 이제는 양계장 한 동만 겨우 채우는 실정이니…”
용인시 백암면에서 5만 수 규모의 산란계 축사 5개 동을 운영하던 농장주 A씨는 텅 빈 닭장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20일 양주시의 한 산란계 농가에서 처음으로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데 이어 지난 3월 7일까지 4개월간 도내 14개 시·군에서 123개 농가가 잇따라 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도가 지난 10일 파주시를 마지막으로 도내 가금류 이동 제한 조치를 모두 해제함에 따라 가금류 농가들은 재입식에 필요한 병아리를 공급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AI의 여파로 인한 계열회사의 병아리 공급 부족과 정부의 까다로운 재입식 절차 탓에 이전 규모의 축사 복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실정이다.
화성시에서 육용종계 농가를 운영 중인 B씨 또한 이 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육용종계의 경우 산란계 농가에 비해 원종 피해가 적었던 탓에 운 좋게도 2만여 수의 병아리를 들여올 수 있었다.
B씨는 “정부의 보상금도 고맙긴 하지만 애써 키운 자식 같은 닭을 생매장해야 했던 그날을 회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농가 입장에서는 금전적 손해 보다 정신적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며 “우리 농장의 경우 다행히도 타지에서 안전하게 길러오던 병아리를 이동 제한 조치 해제에 맞춰 들여와 현재는 축사 2개 동에서 첫 산란을 시작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육용종계를 기르는 B씨와 달리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A씨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A씨는 “산란계의 경우 다른 종계와 달리 알을 낳아야 하는 모계가 씨가 말랐고, 그나마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으로 알고 있다”며 “병아리 공급은 비교적 낙관적이라 쳐도 당국의 방역 기준이 필요 이상으로 워낙 까다로워 입식이 늦춰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내 지자체 등에 따르면 농림축산검역본부는 AI 피해 농가에 대해 축사 청소 상태부터 소독시설의 설치·작동 여부, 야생조류 차단 그물망 및 전실 조성 여부 등 수십여 개의 까다로운 방역 조건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춘다 해도 관할 지자체로부터 1차 점검을 거쳐야 하고, 최종적으로 검역본부의 승인에 따라 시험 축을 들여와 3주간의 입식시험까지 치러야만 완전한 재입식이 가능하다.
방역 당국이 재입식에 난항을 겪고 있는 피해 농가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에 전국에서 가금류 이동 제한이 해제됨에 따라 재입식 관련 농가들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방역 당국의 입장에선 온당한 처사”라면서도 “피해 농가의 아픔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입식 시험에 있어 당초 6주 이상의 시험 축만을 허용하던 것을 4주로 내리고, 수컷 병아리를 시험 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민기자 wal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