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공간이자 정서적 안식처인 ‘집’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식물을 비롯한 물질 역시 집을 이주한다.
이처럼 완전하지 못한 불완전한 모든 존재는 정처 없이 떠돌며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오는 10월 13일까지 2019 경기도미술관-가오슝미술관 교류 주제전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Moving&Migration’ 전을 개최한다.
전시는 한국과 대만의 총 19팀의 예술가들이 ‘Moving&Migration’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1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이주’에 대한 다층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불안한 모든 존재의 ‘이주’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문주 작가가 그린 네 개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가는 지난 1994년부터 재개발 지역의 폐허가 된 도시의 특정 장소와 그 과정에 주목하며 그려냈는데, 특이한 점은 모든 작품이 자연스러운 한 곳의 풍경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시점을 초월한 부분 부분의 장면들이 공존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크루즈’ 작품이 이를 잘 표현해냈는데, 이러한 작가의 기법은 왜곡과 과장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 속의 지극한 사실을 극대화하고 있다.
누군가의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은 다른 누군가의 빈곤과 파탄에서 나온다.
작품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크루즈를 타며 즐기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모습을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표현하며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어 루위뤠이 작가의 ‘오징어잡이 배-출항&바닷길’을 포함한 안성훼이 작가의 ‘꿈 속에서’ 등 다수의 작가의 작품이 펼쳐져 있는데, 주목하고 싶은 작품은 믹스라이스 작가의 ‘믹스프룻’이다.
‘믹스프룻’은 믹스라이스 작가가 소외된 이들의 흔적을 찾으며 공동체를 향한 작업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이 신선한 점은 이주하는 물질 가운데, ‘열매’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열매는 유동적으로 이동하기도 하며, 또 그곳에서 제대로 안착하기 위한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열매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일종의 ‘세계’이자 낯선 ‘무엇’이다.
믹스라이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방인’을 열매라 칭하며 이 작품을 만든 듯하다.
특히나 의미 있는 점은 작가가 한국에 온 이주민들과 진행한 워크숍의 결과물로, 이주민들이 모국에서 먹던 열매를 한국에서 키워먹는 일상적인 생활과 대화의 조각들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의 색다른 발상과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 주변을 반추해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전시장의 다른 섹션으로 이동하면 어두운 공간에 위치한 네 작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점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식물 채집을 한 것과 재개발 단지에 버려진 가구들을 한데 전시해 놓은 나현 작가의 ‘타로막’, 외지인으로서 한 여성의 60년을 보여주는 허우수쯔 작가의 ‘에피소드Ⅱ: 긴시간도 언젠가는 다하리’, 종묘와 대림동을 사실적으로 극명하게 대비시킨 안유리 작가의 ‘포촘킨 스터디1’,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버려진 쓰레기를 마주하게 한 정재철 작가의 ‘아수라-부분’이 그것이다.
특히 안유리 작가의 ‘포촘킨 스터디1’은 도시 속에 상이한 두 장소인 ‘종묘’와 ‘대림동’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평생 갇힌 몸을 벗었으나, 죽어서도 집을 갖는 ‘종묘’와 비로소 평생 갇힌 몸을 벗었으나, 죽어서도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대림동’.
조그마한 서울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이 두 곳은 놀랍도록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곳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놀랍도록 다르다.
12분가량의 길지 않은 영상을 관람하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여기, 나의 도시’를 생각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제 자리를 찾기 위해 아우성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평범한 일상 속 어느 곳에서나 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전시 공간을 지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섹션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섹션은 보다 밝은, 희망적인 염원이 담긴 작품들이 즐비하고 있다.
한쪽 벽에 위치한 이우성 작가의 ‘분홍산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와 다른 한쪽 벽에 위치한 김옥선 작가의 17점의 작품이 그 경우인데,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이우성 작가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는 여러 세대와 다양한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열 두 명의 사람들을 그려냈고 ‘분홍산수’는 원거리의 시선에서 조망한 서울의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는 흑백으로 그려져 있어 모든 인물들의 외양적으로 다른 점을 해소하며 같은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반면에 색채를 입힌 ‘분홍산수’는 서울에서 다양한 개별적 존재들이 모여 사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의 뒤에 위치하고 있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어 김옥선 작가의 작품들은 ‘빛나는 것들-로컬 연작’을 통해 외래종인 야자나무과의 종려나무가 제주 전 지역에 걸쳐 심지어는 가정집 마당에까지 뿌리내린 풍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가오슝 포트레이트’로 대만인과 결혼한 상호문화 부부들의 2세 청소년 촬영물을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들은 이우성 작가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 속 다양한 개인들을 연상시킨다.
또 이와 동시에 김 작가의 작품 ‘무제_색달3039’가 전시돼 있는데 이는 이 작가의 ‘분홍산수’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대를 걸친 다양한 개인이 ‘분홍산수’에 담겨 있듯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외래종을 비롯한 상호문화 부부들의 2세 청소년들은 ‘무제_색달3039’에 그려진 숲 속에 서로 어우러져 있음을 나타낸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 위치한 이 작품들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이주하며 소외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조명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다각적 관점과 깊은 사유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전시의 구성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아닌 ‘우리’의 상황으로 인식하게하며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잘 전달하고 있다.
/최인규기자 choiink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