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한글 흘림체의 범본이라 할 정도로 수준이 높은 효의왕후 한글 글씨가 보물로 지정된다.
18일 문화재청은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 김씨의 한글 글씨인 '만석군전·곽자의전'을 비롯해 조선 시대 대형불화(괘불), 사찰 목판 등 5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효의왕후의 한글 글씨는 정조의 비 효의왕후 김씨가 조카 김종선에게 '만석군전·곽자의전'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다음 그 내용을 필사한 한글 어필이다.
효의왕후는 이 두 자료를 필사한 이유에 대해 '충성스럽고 질박하며 도타움은 만석군을 배우고, 근신하고 물러나며 사양함은 곽자의와 같으니, 우리 가문에 대대손손 귀감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발문에서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 어필책이 가문의 평안과 융성함을 기원한 왕후와 친정 식구들의 염원이 담긴 자료라고 설명했다.
어필책은 여닫이 뚜껑의 나무책갑에 보관됐고, '곤전어필'이라고 단정한 서체로 쓰인 제목,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필사한 본문, 효의왕후 발문, 왕후의 사촌오빠 김기후의 발문 순으로 구성됐다.
이 한글 어필은 왕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한글흘림체의 범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제되고 수준 높은 서풍을 보여준다.
특히 왕후가 역사서의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며, 당시 한글 서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아울러 제작 시기와 배경, 서예가가 분명해 조선시대 한글서예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왕후 글씨의 보물 지정은 2010년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문화재청은 어필책을 보관해 온 오동나무 함 역시 원형이 잘 남아있어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동나무 함 겉에는 '전가보장(傳價寶藏,가문에 전해 소중하게 간직함)', '자손기영보장(子孫其永寶藏, 자손들이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함)'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 등 5건에 대해, 30일 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 경기신문 = 이성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