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상당수의 유물들이 기증 절차를 통해 들어온 것들이다. 개인이나 단체 등에게 있어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할 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이에 본보는 기증된 유물들의 가치와 기증자들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특별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도박물관 전시실의 기증 유물을 중심으로, 총 10회에 걸쳐 그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오늘 글의 주인공은 이번 연재 시리즈에서 다뤄지는 유물 가운데 가장 최근에 박물관으로 기증된 자료다.
전주이씨 덕천군파 백헌상공 종중은 지난 1986년과 1996년의 경기도박물관 개관에 맞춰 백헌필적, 연지기로회첩서, 효자정려 등 집안에서 소중하게 간직해온 유물들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올해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보물 제930호), 숙종어필 칠언시(보물 제1630호), 계회도, 백헌집, 이경석 시호교지, 이광사 관련 서예자료 등 역사적·예술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매우 진귀한 자료 600여 점을 추가로 기증해주었다.
30여 년 동안 박물관에 차례로 기증해준 유물은 6.25 전쟁이 났을 때도 항아리에 담아 깊이 묻고 피난 갔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 끝에 지켜왔던 귀한 자료들이다.
정종의 10번째 아들인 덕천군 이후생(1397~1456)의 후손 계열인 전주이씨 덕천군파 백헌상공 가문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백헌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을 중심으로 해 4대에 걸쳐 3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경기도의 명문가이다.
가문에서 배출한 대표적 인물에는 이유간(1550~1634), 이경직(1577~1640), 이경석, 이진망(1672~1737) 등이 있다. 그 중 특히 이경석은 덕천군의 6세손으로 인조-효종-현종에 걸친 기간 동안 영의정을 지냈고, 당대의 대학자이자 문장가, 청나라와의 외교를 잘 풀어나간 외교가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나이든 신하에 대한 공경을 담은 이경석 궤장과 사궤장 연회도 화첩
조선시대에는 전통적인 효 사상의 영향으로 나이가 많은 신하를 우대하고 공경하는 정책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영예로운 것은 70살이 넘고, 관직이 2품 이상이 되어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렵고 모두가 꿈꿨던 것은 바로 임금으로부터 궤장(几杖, 안석과 지팡이)을 받는 것이었다.
나이 많은 대신에게 궤장을 하사하는 제도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경국대전'에는 “벼슬이 1품에 이르고 나이가 70세 이상으로서 나라의 중경사에 관계되어 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 벼슬을 물러남)시킬 수 없는 사람은 예조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궤장을 내려준다”라고 적혀 있다.
이경석은 70세가 되던 1664년(현종 5)에 기로소에 들어갔고, 1668년(현종 9)에 74세가 되어 현종으로부터 궤장을 받았다. 궤장이 내려진 것은 이원익 이후 만 45년 만의 일이었다.
이경석에게 내려진 궤장은 교의(交椅) 형태의 의자와 지팡이다. 의자는 필요 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형태로, 앉는 곳에는 노끈을 X자 모양으로 엮었고 등받이 표면은 자작나무 껍질로 감쌌다.
지팡이는 190cm 정도의 새 모양이 조각돼 있는 것과 150cm 정도의 칼이 들어 있는 지팡이, 그리고 총 길이가 141cm인 삽 모양의 지팡이 2점 등 모두 4점이다. 새 모양 조각이 있는 지팡이의 아랫부분에는 농사의 중요성을 담은 살포 형태의 쇠장식을 달았다.
이경석 궤장은 기증되기 이전에 오랫동안 박물관에서 위탁 보관된 상태로 관리됐다. 나무 위에 도포된 칠층이 들뜨고 벗겨져 있었으며, 팔걸이 끝부분이 많이 훼손되고, 노끈 일부분이 끊어지는 등 입수 당시부터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다.
박물관은 2007년에 전체적인 보존처리와 함께 궤장의 수종, 금속, 노끈 등에 대한 X-ray 조사 등 과학적 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이경석 궤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정성스럽고 세심한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이경석이 궤장을 하사받는 장면은 '사궤장 연회도 화첩'에 그림으로 기록돼 있다. 이 화첩은 궤장을 받는 당일의 행사가 시간 순으로 그려진 3점의 그림과 당대 석학들이 지은 축하의 글, 이경석 본인이 기쁜 마음을 담아 쓴 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
3점의 그림 가운데 '지영궤장도'에는 사궤장을 맞는 모습이, '선독교서도'에는 임금이 내린 교서를 낭독하는 장면이, '내외선온도'에는 도승지가 어사주를 올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궤장의 실물과 그 궤장을 하사받는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 함께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궤장은 이경석의 것이 유일하다. 이러한 자료의 귀중함을 인정받아 1987년 일찍이 보물로 지정됐다.
후대에 전해 내려오는 이경석의 명망, 숙종어필 칠언시
<백헌 이경석의 문집을 읽고 느낌이 있어 시를 짓노라>
여러 해 구하여 찾았건만 어찌 늦게야 얻었는가.
종일토록 펼쳐 보았건만 피곤함을 못 느끼네.
충성스런 임금 사랑 상소문에 나타났고
정성스럽고 순수함으로 자신의 몸을 나라와 함께 하니 귀신도 알리라.
선대 조정은 궤장을 내리어 은례가 융숭했고
성조께서 감귤을 내리어 특별한 총애를 입었네.
조정에서 덕으로 화합한 어진 재상이라.
송나라 문정공을 방불케 하네.
위의 시는 숙종(재위 1674~1720)이 이경석의 문집인 '백헌집'을 읽은 감상을 적어 이경석의 후손에게 하사한 시이다. 오랫동안 구하려고 애썼지만 구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구해 읽었는데, 하루 종일 읽어도 피곤하지 않으며 어진 재상으로서 이경석의 충성심은 귀신도 알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현재까지 전하는 숙종의 글씨 중 가장 확실한 자료로 평가돼 2010년 보물 제1630호로 지정됐다. 색깔 있는 꽃무늬의 어찰용 종이를 사용해 작성됐으며, '숙종어제'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려 있어 가치가 높다. 집안에서는 ‘숙종성제보묵(肅宗聖製寶墨)’이라고 각인한 참죽나무 통에 넣어 보관해왔다.
올해 귀중한 가문의 자료를 기증해주신 전주이씨 덕천군파 백헌상공 종손 이용우 선생께서는 “선대의 유물이 좋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보존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박물관에 남겨주셨다.
경기도박물관은 이번 기증 자료들 중 아직 그 내용이 번역되지 않고, 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고서와 고문서 등에 대한 해제와 연구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가문의 보물이 도민 모두의 보물,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밝히는 소중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번 호에서 소개한 ‘이경석 궤장’과 ‘숙종어필 칠언시’는 현재 경기도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 조선실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 (글=유지인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 정리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