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행복구 설렘동/변승희 지음/꿈공장+/127쪽/값 1만2000원
일단 제목만으로도 가슴에 뭔가 몽글몽글 샘솟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심지어 살짝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것을 보니, 그 무언가는 바로 설레임인 듯하다.
'사랑시 행복구 설렘동'이라니, 참 기발하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진 표지는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하늘하늘한 파스텔톤 원피스에 챙이 아주 큰 모자를 쓰고, 한 손에 이 책 한 권을 들고 있으면 딱 어울릴 것 같다.
책 속에 담긴 시들 또한 사랑, 마음, 자연 등을 주제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음직한 내용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직장인이라면 아마도 그 크기가 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책을 다 읽고 나면 한 문장이 머리에 남는다. '저자에게 짝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나?'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부인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 철철 흐르는 작품들을 곳곳에 포진시킨,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자'가 저자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은 모두 창작이에요. 개중 사랑을 다룬 얘기들은 피 끓는 청춘일 때 느꼈던 감성들이 회상이 되기도 했죠."(웃음)
이러한 감성은 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소환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사를 집중해서 듣다보면 노랫말 하나가 자신이 놓치고 있던 감성들을 깨우거나 옛날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저자가 어김 없이 하는 행동은 바로 메모다. 보통은 운전 중에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니 차를 세우는 일도 다반사다. "단어 하나만 살려놓으면 당시 느낀 감성을 잡아준다"는 게 그 이유다.
사실 저자는 30여 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해온, 어쩌면 삭막할 수밖에 없는 기사를 써온 사람이다. 그런데 살짝(?) 어울리지 않는 예쁜 글이란, 기자라는 직업과 뭔가 뉘앙스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슬쩍 물어봤다.
그랬더니 기적의 아침이라고 하는, '미라클 모닝'을 말하는 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침 시간을 소중히 보내려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 말로 미라클 모닝이라고 하죠. 새벽 4시만 되면 꼭 잠에서 깨는 거예요. 이 시간에 뭐라도 해야겠다싶어 운동을 해봤는데, 몸이 너무 힘든거죠. 출근하면 더 힘들고.(웃음) 마침, 제 버킷리스트에 글 쓰기가 있어 시작하게 된 일입니다."
찰나의 번뜩임으로 떠오른 감성, 순간의 메모로 생명줄을 잡게 된 단어들이 글로 조합되는 시간인 셈이다. 해서 이 책의 제목이 '새벽 2시'가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후 이성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한, 낮 시간대에 나름 철저한 검증을 거치면 비로소 새로운 작품의 탄생이라는 희열을 맛보게 된다.
이렇듯 섬세한 감정을 노래하고 있는 시들이지만, 가끔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던지는 다소 거친 표현들은 알 수 없는 심장의 파동을 일으키게 한다.
술술 쉽게 읽어지는 시 속에서 잠시 멈춤을 선사하는, 상당히 공을 들였지만 너무 어렵지 않게 쓴 시어들을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자가 굳이 시들을 일일이 나열해 소개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만, 저자의 위트가 돋보이며 웃음을 자아내는, 다들 공감할 만한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미용실 유목민'.
미용실 유목민 이제 그만하고 싶다/솜씨가 딱 좋은 곳을 찾았다 싶으면/여지없이 방랑자로 돌려세운다/분명히 그 디자이너가 맞는데/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조져놓는다/다시 유목민으로 떠도는 처량한 신세/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건 저주인 걸까/(중략)/제발 한결같게만 해다오.
저자의 특이한 이력도 무척이나 눈길을 끈다. 지금껏 9년 여를 풍수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자신에게 제일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로 여전히 풍수를 꼽는다. 이번 시집을 내기 전 발표한 책, '이렇게 해 보세요~ 인생이 달라질 거예요'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당신이 직접 쓰신, 한문으로 된 고서를 보게 됐는데 거기에 천문학도 있고, 오행을 다룬 부분도 있는 거예요. 풍수 공부를 하셨더라고요. 아버지의 묘 자리도 유언으로 남기셨고, 그에 따랐습니다."
남들은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는 풍부 공부가 그저 재밌는 일이라니, 아버지의 풍수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이 틀림 없지 싶다. 저자가 다음에 선보일 책으로 구상하고 있는 기획도 풍수에 관한 것이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처럼 풍수 기행문을 한 번 써보겠다는 계획이다.
책 말미에 "내 아내가, 우리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어 고맙소. 당신은 항상 내 편이었거늘, 남편이던 지난날이 미어지는걸 보니 이제서야 조금 철이 드나 보오"라며 아내에게 건넨 마음의 시가 이 시집을 더욱 따뜻하게 해준다.
학창시절 백일장에 참가해 시나 수필로 그 실력을 뽐내기도 했던 저자에게 인생 2막에서 열린 작가의 길은 이미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