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에 곰과 함께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기를 바랬는데,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흔히 인내심 부족이라고 평가하지만 호랑이의 도전적 본성을 드러내 주는 이야기이다. 올해 호랑이의 기상으로 한 해를 잘 개척해 나가야겠다.
호랑이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면서도 가장 친한 관계이기도 하다. 특히 호랑이는 효자나 열녀 등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순종하고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효자 호랑이 이야기’에서 호랑이를 만난 사람이 울면서 호랑이에게 "아이고, 형님! 살아계셨군요. 형님이 실종되고 나서 몇 년째 어머니가 형님을 잊지 못하고 슬퍼하십니다." 하는 말을 믿고 호랑이는 수시로 늙은 어머니를 위해 산토끼나 노루를 잡아다 주기도 한다.

효자 최루백(崔婁伯)은 수원사람인데,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겨우 15세인 최루백이 바로 도끼를 메고 호랑이를 쫓았다. 호랑이가 이미 먹고서 배가 부른 채 누워 있었는데, 최루백이 호랑이 앞에서 "네가 내 아버지를 먹었으니, 나는 응당 너를 먹겠다."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고 엎드리니, 단숨에 도끼로 찍고 그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를 수습하여 화성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장사 지내고 시묘를 했다.

하루는 꿈에 아버지가 와서 시를 읊기를, "수풀 헤치고 효자의 여막에 이르니, 감동하여 눈물이 끝없이 흐르네, 흙을 져다가 매일 무덤 위에 보태니, 그 마음 아는 건 명월 청풍이러라." 하였다. 3년 상을 마치고, 땅에 묻어두었던 호랑이 고기를 가져다가 먹었다.

호랑이는 경복궁 안까지 들어올 정도였기에 호랑이를 잡는 전담 군부대인 착호갑사(捉虎甲士)가 편성되었는데 이들에게는 세금이나 부역이 크게 감면되었다. 평양에는 5천 명의 착호갑사가 있었다. 성남 석운동에 활쏘기의 명인인 이효백의 묘가 있는데, 청량리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광주지역 백성들을 해치므로 이효백이 착호갑사들을 데리고 잡아들이기도 했다.

호랑이는 무섭기도 하지만 곶감 하나로 물리칠 수도 있는 순진한 동물이면서, 3재(災)를 물리치는 신령한 힘이 있어, 새해가 되면 축복하는 뜻으로 대문에 그림을 걸거나 붙이는 문배(門排)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

입춘 때에는 용(龍)과 호(虎)를 쓴 글씨를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남자아이의 돌이나 명절 때 쓰는 호건(虎巾), 배갯모, 까치호랑이그림, 절에 가면 산신각에 걸려 있는 신선도 뿐 아니라 무관 벼슬하는 관복의 흉배(胸褙)에도 호랑이를 장식하였다.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속담도 많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고, 범 가는 데 바람 간다고 한다. 중국 한(漢)나라의 명장인 이광(李廣)이 사냥을 나가서 바위를 호랑이로 착각하고 화살을 쏘았더니, 화살이 바위에 그대로 꽂혔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번 그 바위에 화살을 쏘았지만 박히지 않았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정신을 한곳에 모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코로나19와 그 변종 바이러스도 호랑이가 물어가 주기를 기원하면서 정성을 모아본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