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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42. 하남시 하산곡동 이야기

하산곡동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하산곡리에서 1989년 하남시가 승격될 때 하남시 하산곡동이 되었다. 산곡리는 상산곡과 하산곡으로 구분되는데, 이 일대에서 6.25사변 때 공산군에 의해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제목의 시는 모윤숙이 산곡마을에서 피난을 하던 중에 국군의 시신을 발견하고 지은 것이다.

 

 
1933년 12월에는 송파금융조합에서 제12회 송파 양우(養牛) 식산계 품평회를 가졌는데 하산곡의 유인목(兪仁穆)이 3등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 연말에는 하산곡에 있었던 ‘홍춘근 주점’에서 차마 웃지 못할 웃긴 활극(活劇)이 발생했다. 그 사연인즉, 신장리에 사는 39세 된 홀아비였던 윤종규라는 사람이 상산곡의 홍윤옥이 소개하여 홍춘근주점에 머무르고 있던 양평 출신의 김모(25)양과 약혼을 했고, 이제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려고 신부를 태울 꽃가마와 가마꾼을 데리고 홍춘근 주점에 갔더니 약혼녀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마침 그 옆 동네의 젊은이가 이 주점에 왔었는데 동시에 사라져서 윤종규는 고소를 할 예정이었다는데, 그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1924년 1월 26일 일본 황태자가 결혼한 것을 기념하여 그 다음해부터 학술·선행·체격 등이 우량한 아동에게 표창장과 기념품을 주기 시작했는데, 1940년 1월 26일에는 경기도내 소학교 461명, 간이학교 85명 등 546명의 일본인과 조선인 아동에게 표창과 기념품이 지급되었다. 이 때 하산곡 간이학교에서 박영수(朴永壽)가 상을 받았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개최되다가 1930년대에 중일전쟁으로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전쟁에 동원할 인구가 부족해지자 일제는 한국인도 ‘관리해야 하는 2세 국민’으로 생각하면서 대회 규모가 커졌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해방 후에도 분유회사들을 중심으로 개최되면서 "모두가 부러워할 어머니가 되실 기회예요. 맘껏 자랑해 보세요"라는 구호를 내 걸기도 하였다. 이 대회는 식량사정이 좋아진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라졌다.
 


하산곡에는 일찍이 1934년 4월 1일 동부보통공립학교 부설로 하산곡간이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후 1948년 5월에 하산곡국민학교로 독립하였다. 처음엔 학교 건물이 없어서 개인 집을 이용하여 교육을 하다가 1948년 5월 1일 이 지역의 집성촌인 기계 유(兪)씨 종중의 대지 희사로 현재 위치에 학교를 짓고 산곡국민학교로 개교를 하였다. 산곡국민학교의 학구는 상산곡과 하산곡 그리고 천현동 일부이다.
 
1966년 7월 15일에는 중부지방에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져 하산곡 마을의 교통이 두절되었다. 이 때 기습적 폭우로 연천지방에는 15일 하룻 동안에 430㎜가 내렸고, 7월 말경이 되면 전국에 5만 9873명의 이재민과 사망 59명, 실종 16명, 부상 68명, 재산피해 17억 2833만 3000원의 피해를 냈다. 이런 와중에 한강변에 살던 두 형제는 팔당역 상류에서 보트를 타고 다니면서 63만 원에 상당한 전깃줄 약 2000m를 끊어서 팔다가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1981년 4월 26일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민정시찰을 하면서 남한산성과 하산곡의 농사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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