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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51. 상대원의 송언신과 임꺽정

 

상대원(上大院)은 옛날에 광주군 세촌면에 속한 지역으로 대야원(大也院) 위쪽에 있어서 웃대원 또는 상대원이라 불리웠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보통골, 중간말과 사기막골을 합쳐 상대원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고, 1973년 성남시가 되면서 상대원동이 되었다. 상대원 일대를 보통골 또는 보곡동(普谷洞), 반곡(盤谷)이라 했는데, 송언신(宋言愼)의 사당이 있는 곳과 이집(李集)의 사당이 있는 곳을 구별하여 상대원과 하대원으로 개칭한 것이라고도 한다.

 

 
보통골에는 500여 년 된 상수리나무가 있어 동네 사람들이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데, 그 상수리나무 아래가 옛날 의적 임꺽정(林巨正)의 소굴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사람으로 양주에서 백정(白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감히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전국의 씨름판을 돌며 송아지란 송아지는 다 몰아오고 또한 활쏘기와 칼쓰기 대회 역시 일등은 임꺽정의 몫인데도 백정출신이라 벼슬은커녕 항상 천대만 받고 살았다.
 


그 당시 권력자들이 뇌물을 받아먹고 벼슬자리를 팔아먹으니 지방의 수령들은 뇌물로 준 돈의 본전을 챙기려고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기가 일쑤이고, 만약에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감옥살이를 시키는 부패한 세상이었다. 임꺽정도 아버지가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관에 붙들려가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 오는 것을 보고 울분을 삼키며 성장하면서 벼슬은 못할지라도 불쌍하고 죄 없는 백성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임꺽정은 탐관오리들이 백성들로부터 빼앗아 쌓아놓은 양곡창고를 모두 털어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임꺽정과 같은 패라면 숨겨주고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그 후로 가짜 임꺽정이 전국에 활개를 치고 다녔고, 임꺽정이라고만 하면 관리들도 벌벌 떨고 금은보화를 바쳤다. 이 같은 세월이 수년 동안 계속되면서 대대적인 토벌이 시작되어 임꺽정은 상대원 보통골을 떠나 황해도 구월산으로 옮겨갔는데 결국은 토포사인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상대원의 역사인물 송언신(宋言愼,1542~1612)은 할아버지가 양천현령 말경(末璟)이고, 아버지는 부사 율(嵂)이고 어머니는 효행으로 정려된 거창 신씨(愼氏)이다. 11세 때 할아버지가 승회(承誨)라고 이름을 지어주니, 무릎을 꿇고서 말하기를, "어머니께서 저를 낳아 주시고 할머니께서 저를 길러 주셔서 은혜가 모두 가이없으니, 두 분의 성씨를 가지고 이름을 삼아 종신토록 은혜를 잊지 않고자 합니다." 하니, 기특하게 여겨 이름을 허신(許愼)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할머니의 성씨가 허씨(許氏)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허(許)에서 오(午)를 빼고 언(言)만 남겨 두고는 말하기를, "이름을 돌아보고 이름을 지은 뜻을 생각할 것이다."하였다.
 


송언신에게는 자식이 없어 10촌 형의 3남 송준(宋駿)을 양자로 들였다. 송언신은 당쟁의 선봉에 섰던 관계로 반대파의 비평이 높았다. 그러나 선조임금이 비밀편지를 내릴 정도로 30년간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바른말을 하기로 유명했다. 선조임금이 그의 늠름한 건의에 답(答)을 내리면서 ‘만대의 정론(正論)’이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용맹한 호랑이가 산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까지 비유하였다.

 


상대원은 광주대단지가 생기면서 이주한 주민들의 경제활동 공간으로 제2공단과 제3공단이 조성되었다. 집도 없는 곳에 강제 이주된 주민들이 처음엔 아무런 생계대책도 없었고, 1971년 8월 10일 생존권 확보를 위한 과격한 항쟁이 있은 후로 1974년 9월에 제2공단이 준공되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